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필립 퍼키스 글.사진, 박태희 옮김 / 안목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정리하는 일을 매일 조금씩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사진을 찍을 때 갖는 자의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딱히 없었다. 취미로만 사진을 찍고, 스스로가 평균보단 잘 찍는다는 생각 정도는 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거나, 최고의 사진가가 되겠다라는 생각, 하다못해 사진집이나 사진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다.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 상태로는 이 블로그를 통해 내 사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사진을 찍을 때도 찍는 대상이나 구도 각도에 대해 아무런 의미 부여도 하지 않고, 그냥 내 눈에 보기 좋게 직관에 따라 프레이밍을 한 다음에, 자동 카메라의 경우 조리개도 셔터스피드도 신경쓰지 않고, 혹은 수동 카메라의 경우엔 대강 이런 설정이면 되겠지라는 느슨한 생각 속에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책의 초반부에서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마라,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마라(p.19)'는 이미 내가 아주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상징이나 의미가 담긴 사진은 어떻게 찍는 걸까, 주제를 정해 사진을 찍는 건 어떤 일일까,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나도 의미와 주제를 따라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졌다. 동시에 근사한 사진을 찍으려고 프레이밍을 하는 것 자체가 의도와 의미를 담는 행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책장을 넘겼다.


한 가지 주제로 -사람, 장소, 물건, 여러 가지 물건이 섞인 것- 필름 한 통을 찍는다. (...) 뭔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해서 사진을 찍고, 다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때까지 카메라를 치워 놓고, 다시 발견하고, 다시 찍고, 다시 치워 놓고... 대개 사진 촬영은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진 매체를 가장 깊이 있게 다루는 방식은 아니다. (p.71)


나는 사진 찍는 나에 대한 자의식은 거의 없지만, 내가 찍은 사진에 대한 자의식은 있다. 이게 서로 다른건가?라는 의구심은 있지만 어쨌든 그렇다. 나는 남이 찍은 사진을 보는 것엔 큰 흥미가 없고, 내가 찍은 사진만 좋아하는, 일종의 사진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평소에 사진 자체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보다 제가 직접 찍은 사진을 좋아해요, 라고 말해야 더 정확한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의 아쉬운 점이 자꾸 보인다. 특히 블로그를 통해 앨범형으로 내가 여태 찍은 사진들을 한눈에 쫙 살펴보면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갑갑함이 있다. 여유라든가 활기 같은 게 부족하달까. 예상 가능한 프레이밍, 정적인 피사체들, 너무 딱 맞은 구도들. 내가 사진을 찍을 때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과 직관을 믿지 않고, 너무 신중하거나 계산적인가. 이런 생각이 종종 들던 참이었기에 책 속의 한 문단이 나를 위한 말처럼 읽혔다.


나는 편집을 두 과정으로 나눈다. 편집의 첫번째 과정은 사진 촬영, 필름 현상, 그리고 수많은 시험 인화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작업의 진행 상황을 추적하고, 내가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경험하는 것의 관계를 배워 나가는 것이다. 편집의 두번째 과정은, 내가 참여하는 과정의 정점이 될 필름을 만드는 순간을 위해 늘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 필름이 나한테는 중요한 사진이 될 수도 있다. 이 두 과정은 반드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첫번째 과정만 생각하면, 촬영할 때 "아무거나 찍으면 그만이지"하며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 두번째 과정만 중요하게 여긴다면, 내가 이전에 찍었던 것이든 다른 사람의 사진에서 보았던 것이든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만 되풀이 해 찍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내 앞에 발견의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내게 발견이란 곧 세계의 티시미스다. (p.95)


책의 말을 빌리면, 나는 나 자신에게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만 되풀이 해 찍는 것 같다. 좀 더 다양하게, 마구 찍어서 발견의 문을 더 열어젖혀야 할 필요가 있는데. 예컨대 모델과 함께 소통하며 사진을 찍어본 경험은 없으니 그런 경험을 늘린다거나, 혼자 고독하게 사진을 찍기보단 좀 더 활기로운 장소에 가서 적극적으로 찍는다거나 등등. 나는 특히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사진을 찍는 것에 소극적이게 되니깐, 이건 단점이라고만 말할 순 없고, 어떤 면에선 다행스러운 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론 사진을 찍을 때 보수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좀더 막막 찍어서 내 사진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


또 책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내 생각'을 찍는 것이라고 말한 부분(옮긴이의 해설)이 좋았다. 아무래도 사진이라는 것은 내가 직접 펜이나 붓을 들고 창조하는 게 아니라 카메라라는 기계를 매개로 바깥 대상의 것을 포착하는 것이다보니 사진을 찍는 '나'의 존재를 잊어버리기 쉬운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퍼키스의 말은 '아 결국 사진을 찍는 건 나지', '내가 프레이밍을 하고, 내가 찍는 순간을 결정하는 거지'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니 나 자신이 자꾸 내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게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사진을 찍는 것은 내 안의 무언가와 합치되는 바깥의 대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숟가락을 찍는다면, 숟가락에 대한 내 '생각'을 찍는 것이지 숟가락 자체를 찍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아이디어'란 내 안에 있는 '무엇'이다. 사진은 '무엇'을 밖으로 드러낸 것이다. (p.137)


글 한 토막이 끝날 때마다 함께 실린 퍼키스의 흑백 사진들을 보니 나도 그처럼 흑백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졌다. 그의 흑백 사진들은 답답하지 않고 흑백이라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필립 퍼키스가 예로 들고 있는 작가들의 사진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역시 좋은 사진이 많았다. 어쩌면 내가 내가 직접 찍은 사진만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직접 찍은 사진만 봐왔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들을 찾아보려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필립 퍼키스가 언급한 작가들의 사진을 모아서 스크랩북처럼 모아 놓고 보고 싶어서 서칭까진 했으나 귀찮아서 정리는 못했네. 급하게 할 필요 없고, 천천히 조금씩 하면 된다. 이제 내가 찍은 사진만 보지 말고 다른 작가가 찍은 사진들도 적극적으로 찾아봐야지.


이 책을 읽으면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자연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또 동시에 우연 혹은 은총 혹은 축복의 세례를 기다리는 일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시대가 변해 이제 사진 찍는 일은 정말 너무너무 쉬워졌고, 핸드폰만 있다면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든 아주 쉽고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런데 그만큼 사진을 찍을 때 신경이 많이 무뎌지고, 찍는 순간에 찾아오는 우연의 기쁨은 느끼지 못하며, 사진찍기란 '세상을 더 깊게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하면 가볍고 별것 아닌 일에 대해 과하게 의미부여 하는 일처럼 느껴저서 어딘가 낯간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너무 익숙하고 쉬운 일에 대해서도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 분명 즐거움을 느끼니깐. 그 즐거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찍은 사진을 볼 때 느끼는 기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떤 것을 카메라로 찍고 싶다는 감정은 내가 가진 가장 순수한 욕망 중 하나이지만, 그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게 내게 왜 즐거움을 주는지 이제는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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