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틀비와 바틀비들
엔리께 빌라―마따스 지음, 조구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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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시작을 함께 한 책은 엔리께 빌라-마따스의 <바틀비와 바틀비들>이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4년 전인데 소설 수업 시간에 <필경사 바틀비>를 읽으면서 선생님께 추천 받은 책이었다. 수업시간에 책 제목을 듣고 잊고 있다가, 어느 날 이 책을 다시 찾아봤는데 인터넷 검색이 잘 안되었다. 알고보니 내가 ‘바틀비와 바틀비들’이 아니라 ‘바틀비와 비틀비틀’로 기억하고 있었고, 책을 실제로 보고 나서도 계속 그렇게 읽었기 때문이다. 암튼 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게 무슨 책인가 싶었다. 소설이라해서 소설인 줄 알고 집어들었는데 텍스트 없는 각주라면서 문학에서의 바틀비들을 찾아간다는.. ‘아니오’의 문학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이.. 조금은 난감했다. 하지만 각주를 몇개 읽으니 금방 적응해갔다. 이 책은 문학계에서 바틀비증후군을 겪은 작가들에 대한 각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바틀비 증후군’이란 책의 표지에 따르면 ‘결코 글을 쓰지 못하거나, 절대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부정적인 충동 또는 무(無)에 대한 끌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이 정확한 팩트는 아니겠지만(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오가는 것 같다) 읽으면서 정말 많은 작가들이 절필을 선언했고, 그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는 게 흥미로웠다. 특히 좀 엽기적이었던 건 모파상의 절필 이유였다. 본인이 불사신이라고 믿고 절필을 했다는 것이다(당장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모파상 전기나 그에 대한 연구를 찾아봐야 팩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파라노이코 페레스라는 인물의 이야기도 재밌다(이 이야기는 허구가 아닐까) 주제 사라마구가 자신의 아이템을 자꾸 훔쳐가서 자신이 글을 쓰지 못하고 절필을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재밌다. 이밖에도 그 당시 유행하는 쇼비즘 때문에 거기에 휘둘려서 글을 쓰지 못한 작가 마리아의 이야기는 너무 공감이 되었고, 그 어떤 단어도 객관적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이유로 절필을 선언한 작가 호프만스탈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읽으면서 유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자주 발견할 수 있어서 놀라웠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가는 톨스토이인데, 그에 관한 각주를 읽으니 그 예술은 저급한 것이라고 말한 그의 예술론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작가의 절필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절필에 관한 이야기가 제일 재밌었다. 그리고 그 많은 절필의 이유들을 읽으면서 요즘의 영화감독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영화계에서는 정말 많은 감독들이 영화를 못 찍고 있다. 자의적으로 은퇴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자의적인 경우도 많고, 아마 대부분 비슷비슷한 이유일 것이다(투자를 못 받았다는 이유). 그래서인지 작가들의 절필에 관한 다채로운 이유들(허구가 포함되어 있다 할지라도)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언제든지 절필 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언제든지 다시 쓸 수 있고, 글은 사실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절필의 이유가 더욱 궁금하고 흥미로운 것이다.


해가 넘어가면서 읽은 소설이었는데, 소설을 읽다가, 1월 1일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에, 이 책에서 말하는 바틀비 증후군에 관한 단편 시나리오를 아주 빠르게 써내려갔다. 주인공에 완전히 감정이입해서 써내려간 시나리오라 부끄럽기도 했지만 쓰면서 어떤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만족스러운 시나리오는 아니었지만, 다 쓰고나니 나 자신에게도 얼마나 바틀비스러운 것이 있는지 새삼 느꼈다. 하고 싶지 않은 충동..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충동이.. 내게도 있다는 것.. 새해를 이런 감정으로 맞이해도 되나 싶지만.. 그래서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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