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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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의 <자정의 픽션>을 읽었다. 내게 박형서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이전에 읽어본 작품은 하나도 없는 낯설지만 익숙한 작가였다. 우리학교 문창과 교수여서인지, 문창과를 이중전공한 몇몇 친구들이 자주 그의 이름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의 이름과 함께 했던 말 중에는, 한국 소설들은 유난히 문체에 신경쓰고 서사에는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다, 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이 얼마나 서사적으로 대단하길래, 라는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그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나? 그의 소설이라고 해서 다른 한국 소설들과 유별나게 다르다는 느낌은 없었다. <자정의 픽션>은 충분히 재밌고 싱겁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크게 새롭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래도 이 소설집만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사회 문제에는 별관심이 없고 환상적인 요소가 조금 가미되어있다 정도일까. 이말인즉 시대와 사회 그리고 현실에 그리 천착하는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고민이나 모순에는 관심이 없고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소설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의 소설이 라이트 노벨처럼 가볍거나 허투로 쓰여진 작품이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문장은 정갈하고 인물과 감정의 균형감도 알맞다. 자칫 유치해보일 수 있는 설정을 문장과 구성으로 잘 이겨낸다. 오히려 나는 서사의 재미보다는 이 문장의 정갈함과 소설의 균형감에 감동하며 읽었던 것 같다.


소설집에 실린 8편 중 특히 <논쟁의 기술>과 <날개>, <노란 육교> 이 세 작품을 재밌게 읽었다. 다른 작품들은 그리 신선하지도 않았고(이 책이 벌써 10여년전에 나온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진실의 방으로>같은 소설은 조금 유치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두유전쟁>은 두유가 그 두유인지 알고 깜짝 놀랐다. 마지막에 그 두유의 힘은 대단했지..


반면 <논쟁의 기술>은 제일 처음 읽은(오랜만에 소설집에 실린 순서대로 읽었다) 그의 소설인데 설정이 재밌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나타나는 실제 말의 이미지가 재밌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서재를 머리속에 그려보니 공간적으로, 그리고 이미지적으로 완전 내 취향이었다.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서재(정확하게는 교수연구실이다)에 들어오는 밤색의 커다란 말과 길쭉한 날이 달린 창을 들고 있는 거구의 사내라니. 슬로우모션으로 그려지는 이미지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날개>는 읽으면서 무슨 내용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는데, 그런 걸 잘 파악하지 못해도(불친절한 묘사와 중구난방으로 뻗어가는 상상력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데는 무관심하다)  ‘날아서 왔어요’라는 단순한 문장에 감동을 받은 소설이었다. 옛 연인과, 옛 연인의 DNA를 통해 얻은 아들이 함께 내뱉은 말. ‘날아서 왔어요’의 시간차가 주는 감동이 이 소설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노란 육교>는 죽음과 애도 그리고 잊혀짐에 대한 소설이다.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의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단순한 설정이지만, 애도의 장소로서, 관광지로서, 교육의 장소로서 역할을 하는 노란 육교를 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스친다. 이 소설 역시 마지막이 좋았다. 노란육교가 사라지는 그 순간에 나타나는 자전거를 탄 꼬마 아이. 이 순간은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쓰고보니 박형서의 소설은 엔딩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단편 소설은 짧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는 짧지만 그 여운은 길게 가져가야하기에 어쩌면 장편 소설보다 엔딩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소설들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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