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법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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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오한기가 후장사실주의자 중 한 명이고, 어디선가 정지돈이 오한기의 소설이 더 읽히고 인정받아야한다고 말한 인터뷰를 보고(그는 오한기의 작품을 칭송하기보단 오한기의 작품에 대한 평단에서의 무반응에 대해 말한 것 같다), 그리고 '젊은 작가상'에 실린 그의 단편 <새해>를 꽤 재밌게 읽은 후, 그의 소설집을 언젠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집의 제목도 ‘의인법’인 것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막상 읽은 그의 작품들은 나의 기대가 컸던 탓인지 조금 실망스러웠다. ‘젊은작가상’에 수록되어서 이번에 다시 읽게 된 <새해>나 소설집의 가장 앞에 실린 <파라솔이 접힌 오후> 정도가 재밌었고, 나머지는 그리 새롭게 혹은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소설 속 주인공이 대부분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고(나는 창작자가 주인공인 창작물들에 흥미가 간다),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 사이에 서로 중첩되는 대상이나 이름들이 나오기 때문에, 한 소설을 읽으면 다른 소설이 저절로 궁금해져서 수록된 모든 단편들을 읽을 수 있었다. 제일 아쉬웠던 건 <햄버거들>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햄버거들>은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주구창창 햄버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는 것만 같았다. 그런 나열에 가까운 구사들이 재미도 없을뿐더러 유치하기까지 했다. 만약 작가가 무의미 혹은 무의지와 같은 것들을 지향했던 것이라면, 어느정도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어떤 텍스트를 조금이라도 의미롭게 읽고 싶은 나와는(나에게 활자를 읽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다)(소설 속에 있는 의미를 내가 전혀 캐치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잘 안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수록된 소설들 전체적으로 나오는 끊임없은 성적인 농담이라고 해야할까, 다시 한번 과격하게 말하자면 여성혐오적인 구절들이 이 책을 오히려 낡고 시대착오적인 소설집으로 만들어버렸다. 심지어 어떤 대목에서는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소설 속에 인상적인 이미지들이 몇몇 있는데 예를들면 <새해>에서 도서관에서 만난 한상경이 한 손에는 피츠제럴드를 안고 다른 한손에는 시집을 들고 있는 장면이라든가, <파라솔이 접힌 오후>에서의 허름한 고서점, <더 웬즈데이> 속 볼링장 안에 붙어있는 햄버거가게 정도이다. 오한기를 비롯해서 후장사실주의들이 표방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숭배나 신성시를 거부하고, 문학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 그러니까 '이런 것도 문학이야?'라고 의문이 드는 작품들을 쓰는 것인 것 같은데, 그 지점에서는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지만 작품의 내용이 '의미없음'에 못지않게, 이런 시도나 행위 자체가 나 자신에게는 의미없이 다가온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가들에게는 이런 예술의 지평을 넓히고 전위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의 의미롭고 중요할 수 있겠지만, 독자인 나로서는 아무 의미 없고 상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 소설집이 그렇게 새로운지도 모르겠다. 암튼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직 정지돈의 소설을 읽지 않아서 그들이 좋다 아니다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후장사실주의자들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 적어도 이 책은 내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아쉬움이 남는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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