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사람들 1 열린책들 세계문학 12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윤우섭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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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상처받은 사람들>을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가슴 아프게 읽었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 장편으로 아직 캐릭터나 서사적인 면에서는 조금 미숙하지만 이후 그의 걸작들의 토대가 되는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도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데 이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이 소설의 주인공 이반 뻬뜨로비치는 소설가이다. 이반은 첫장편을 발표하고 평단으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았지만 이후 별다른 작품을 쓰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그때그때 단편만 집필하며 지내고 있는 인물이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첫 장편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고 비평가 벨린스끼로부터 호평을 받은 이후의 상황과 중첩된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는 40년대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지고 있었던 입장들, 즉 낭만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태도를 고스란히 가지고 드러내는 인물들이 여럿 나타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악인으로 등장하는 공작 발꼬프스끼를 통해 이런 낭만주의적인 인물들을 비판한다. 이는 50년대의 도스토예프스키가 40년대의 이상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자신을 회상하며 비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비판을 악인을 통해 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 소설 속 사랑이야기는 절절하다. 나는 나따샤의 이야기도 넬리 이야기도 둘다 아주 이입해서 읽었다.  이전에 나 자신이 나따샤와 알료사 혹은 까쨔와 알료사가 하는 사랑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나따샤와 까쟈는 둘다 알료사를 사랑하는데 이 둘은 알료사가 너무나 순진하고 철없고 이기적으로 행동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예를 들면 (소설에서 좀 더 자세히 묘사되는) 나따샤의 경우 알료사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와도 그가 용서를 빌면 용서를 해주고 알료사는 이런 용서해주는 나따샤에 더욱 감동하고 이들의 사랑은 더 깊어지는 식이다. 소설에서는 이들의 행동을 약간 조롱하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예전에 이런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기에 조롱할 거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한 여자가(꼭 여자가 아니겠지만 편의상) 자신의 애인이 나쁜 행동을 해도 그를 다시 받아주는 일에 대해, 그 사람의 나쁜 행동에는 악의는 없었고 단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조금은 이기적인 사랑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서 내 머리속에는 두 가지가 충돌했다. 하나는 이 여자에게는 자존감이나 자존심이라는 게 없는 것인가? 또 하나는 이 여자는 자신의 자존심보다 애인을 택했기 때문에 그만큼 그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건 정말 진정한 운명적인 사랑이 아닐까? 전자는 좀 더 사랑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때 떠올린 것이고, 후자는 반대로 사랑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떠올린 것이다. 선생님은(이 작품은 학교 수업중에 읽은 책이다) 이들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라고 했다. 이들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남녀간의 상호적인 관계가 아닌 모성애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유욕 자체가 하나의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따샤의 사랑도 까쨔의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라기보단 이기적인 사랑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동의 했다. 그리고 드디어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답이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 오면서 다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소유욕이 없는 사랑이 가능한가? 소유하고 싶은 욕망만큼 더 사랑하는 건 아닐까? 결국 이들이 뜨거운 열정을 느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사랑은 원래 불완전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다시 나는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결국 이후에 진정한 사랑은 그리스도적 사랑뿐이라고 이야기했다는데, 한없이 비참한 땅에 발붙여 살고 있는 나에게 그리스도적인 사랑은 너무 멀게 느껴지고.. 그리스도적인 사랑에서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는지도 의문스러웠다. 아마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못 구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사랑이아닌 소유욕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알료사가 너무 어리석고 천진하게 그려진 것이 조롱받는 것 같아서 조금 불만스러웠다. 아니면 아직 내가 낭만에 빠져있는 것인가. 혹은 그걸 그리워하는 것인가. 그러면 어때, 내 안에 아직 낭만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라고 말하기엔 조금 슬프다.


이밖에도 이 소설의 구조가, 비록 느슨한 우연에 의해 생겼다지만, 그럼에도 너무 재밌다. 넬리 이야기와 나따샤 이야기가 질적인 면에서도 양적인 면에서도 균등을 이루지 않지만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선생님이 주인공이 공작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동의가 잘 안된다. 주인공은 넬리가 아닌가? 넬리는 너무 슬프고 나따샤도 슬프고 이반은 너무 바보같지만 또 너무 착해서 슬프고... 이미 죽어버린 넬리 엄마와 스미트 노인도 슬프고 알료사가 편지를 아주 고통스러워하며 보냈다고하니깐 알료사 마저 불쌍해지고..이런 여러인물들이 내 마음을 울리는데.. 공작은 내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 그래도 공작이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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