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리커버 특별판, 양장)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컬렉션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이전에 까뮈의 작품은 <이방인>밖에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마저도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 때 읽었던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페스트>는 그 두께와 까뮈라는 이름 때문에 어려울 거 같았는데 사실 재밌고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소설은 페스트라는 엄청난 재앙을 배경으로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을 하나씩 만나는 게 이 소설의 재미다. 가장 호감가는 캐릭터는 의사 리유. 그의 침착성과 합리성은 정말 호감이 간다. 하지만 이건 결국 소설 말미에서 밝혀지는 것이지만, 소설의 서술자가 의사 리유 때문이기도 할 거다. 소설에서 리유의 감정이나 행동은 늘 절제된 표현으로만 나타날 것이니..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의사로서 이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함이라는 것, 즉 자신의 직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모습까지도 멋지다. 다른 인물들, 타루, 그랑, 코타르까지 다 호감간다.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라는 구절.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사실 나는 혼자만이라도 행복한 걸 추구하는 편이다. 이기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남에게 피해만 안준다면 혼자만 행복하는 걸 택하는데 크게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정말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충만한 행복이 아니었던 것은 그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 선택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가장 가까운 일로는 연출부를 그만둔 게 떠오른다. 그만둔 후에 찾은 자유 이외의 꺼림칙함이 결국 이 문장에서 말하는 부끄러움이겠지?


그리고 소설에서 이별에 관해서, 특히 생이별에 관해서 중요하게 다룬다는 인상을 받았다. 재앙으로 인해 생긴 갑작스러운 이별 속에서 그들이 겪는 감정의 모순들을 여러면모 보여준다. 헤어진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생각하느라 정작 헤어진 사람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사랑의 이기주의가 그들이 페스트를 견디는 방패막이 되어준다는 것, 이별은 정열적인 사랑을 하는 연인들에게 더 큰 사랑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정된 결혼생활을 오래한 부부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 등등이 그러했다.


그리고 영웅주의를 배격하려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보건대의 행동이 영웅주의처럼 보이는 것을 리유는 거부한다. 반면에 소박하게 살아가고 보건대에서도 작은 일을 도와주는 그랑을 오히려 영웅이라고 말하곤 한다.


전반부는 대체로 재앙으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어떤 모순된 감정, 어긋나는 감정들을 보여주는 것에 주력하고, 후반부는 등장인물들의 좀더 구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서 전반부는 문장에서 느끼는 게 많고, 후반부는 인물들의 행동을 보는 재미가 크다.


책 뒤에 역자의 김화영의 작품해설이 같이 있는데 해설을 읽고 나니 랑베르가 추구한 행복, 랑베르가 얻은 행복이 더 가치롭게 보였다. 까뮈는 결코 보건대의 영웅적인 면모를 랑베르의 개인적 행복보다 우선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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