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이 온다
이정하 지음 / 문이당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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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시 사랑이 온다

 

이정하 시인의 시집이 오랜만에 나왔다. 이정하 하면 가장 먼저 '낮은 곳으로'라는 시가 생각난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던 그의 문장에 힘입어 사랑도 해 보고, 이별도 해 보고 청춘을 청춘답게 보낼 수 있었다. 12년 만에 방황하다 다시 찾아온 이정하는, 반가움과 고루함의 경계에 있는 시집을 들고 왔다. 12년 만의 시집이라 반갑기도 하지만, 내가 고루하다고도 느끼는 것은 나무를 벗어나 산을 훑었을 때처럼 시집 전체로 보면 조금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시 한 편이 아니라, 시집 전체로 보았을 때 분위기가 평이하고, 단조로우며, 너무 비슷하게 맞닿아 있어 마치 결론이 뻔하고 클리셰 짙은 일일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번 시집을 보면서 오히려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았다. 동시보다 유치하고, 일상 속에 했던 말을 그냥 줄 바꾸기만 하여 몇 줄 써 놓은 것이 시라고 한다. 옛날 시집보다 더욱 직접적이며, 의미심장한 여지도 없는 그의 시에서 '12년 만의 신작'이라고 의미 부여했던 것들이 허무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 시집을 한 페이지도 빼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다.

 

왜냐하면, 이 시집에 한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그의 시 세계가 설레고 반가웠지만 역시나 다를 것 없는 그의 사랑 타령에 나는 웃음까지 났다. 처음 그의 시집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10대였고, 어느덧 30대가 되었다. 나이도 먹고, 마음가짐도 변했고, 직업도, 성격도 변했다. 그런데 이정하는 아직도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그 모습, 그 자리에서 사랑과 이별, 그림과 염원에 대한 감정을 호소하고 있으니 세월의 풍파에도 꺾이지 않은 여름꽃 같았다. 변한 내가 멋쩍기도 했지만, 여전히 촌스럽고 감성적인 그가 반갑기도 했으니까 예의상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일단 생각 없이 읽기에도 편했다. 시집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난 사랑이 온다, 도둑고양이처럼, 길이 끝나는 곳에, 어디쯤 가고 있을까 라는 소제목을 달고 장마다 약 20편 내외씩을 담고 있다. 80편에 웃도는 모든 시를 대할 때마다 나는 어렵지 않게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잊어버렸다.

 

별로 기억할만한, 기억에 남는 문장이 없었지만 79쪽의 '지금'이라는 시를 읽으며 이 시집을 예의상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한다, 한번 지나가면 그뿐 흐르고 흘러,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올 길은 영영 없다, 그러니 어찌 소중하지 않으랴, 어찌 간절하지 않으랴, 지금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내 눈빛에 담기는 모든 것들이'라고 쓰인 두 연이 인상 깊었다. 어렸던 내가 느꼈던 그와 그의 시들, 지금의 내가 느끼는 그와 그의 시들이 다르다.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그의 시에 있는 매개물과 상징이라고 한다면 훗날 내가 50대가 되었을 때는 마음에 쏙 드는 시집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 또는 이정하가 12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시집이 30대 때 흘러가듯 읽은 것이라고 추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나는 시집을 읽으며 '지금'이라는 시 이외에도 마음을 흔들 문장 하나가 있을까 뒤적거렸고, 시집치고는 부산스럽게 읽었다. 그리고 이정하의 이번 시집에서 주목한 지점은 이정하의 '당신'이다. 이렇게 사랑에 맹목적인 그가, 12년간 방황했던 것은 비단 '사랑'과 '사람'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고, 사람은 때때로 시에서 '당신'으로 형상화되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이번 시집에서 '당신'은 그녀가 될 때도 있고, 어머니가 될 때도 있고, 아버지가 될 때도 있고, 정의할 수 없는 이를 명명하는 것도 있었다. '당신'과 사랑하고 헤어지고 '당신'을 만나고 '당신' 때문에 아파한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과 관계하기 위해 이정하가 택한 수단이자 그들을 관통하는 고리라고 결론 내렸다. 끝으로 시집을 읽기 전, 이정하가 먼 길을 돌아왔다면 그만한 깊이와 사색이 담겨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아직 사랑을 이용해 '사람'을 찾고, '사람'을 부르는 그의 메시지가 잘 담겨 있는 작품집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변치 않는 시를 써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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