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본 - 로봇 시대 인간의 유일한 자본
이상민 지음 / 서울문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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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자본

 

많이 써 본 사람이 글을 잘 쓴다고 했다. 많이 읽어본 사람이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잘 알 것으로 생각했다. 4,000권을 읽었다는 작가의 경험담을 통해 다양한 독서법을 배우고, 책을 빨리 읽는 방법과 많이 읽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보통 책을 보면 읽다가 도중에 지치기를 다반사, 한 권을 읽어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습관이 들지 않아서인지 남들보다 속도도 느리고, 책에 대한 편식이 심해서 이 책의 저자처럼 독서가라는 칭호는 내 사전에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방법을 찾거나 개선되었다기보다는, 적어도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나름의 계획을 세워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독서 자본>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3,000권 독서 자본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스펀지처럼 일단 1,000권 읽기, 2,000권부터 읽는 방법, 3,000권 이상에 해당하는 고수의 독서법, 마지막으로 정독을 위한 속독법이 단원별 주제이다. 장마다 흥미가 가는 내용도 있었고, 타이틀보다 내용이 빈약한 대목도 많았다. 특히 이 책의 첫 문장부터 새삼스러운 시선에 의아하기는 했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계 최고 바둑 고수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배하면서 이미 현실이 된 로봇 시대를 실감할 수 있었다."는 첫 문장은 여느 보도에서 이세돌 9단의 1승을 축하하던 것과는 달리 너무 단정적이고, 냉소적인 느낌을 주었다. (글 전반에 저자가 가진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 깔렸다. 하물며 "실패한 사람 곁에는 있던 사람도 떠나고 없다든지 하는 문장들이 있다) 사실 작가는 독서 자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독서를 자본으로 귀결시키는 것에 너무 거대하고 진부한 명분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내가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독서가 자본이냐 아니냐를 두고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독서법을 빌려 올해 단 서른 권의 책이라도 섭렵하자는 데 있었기 때문에 책을 다 읽어보기로 했다.

 

책을 읽으며 공감했던 대목도 있지만 의아한 대목도 많았다. 우선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가독성이다. 문장이 간단명료하게 적혀 있어서 잘 읽히는 편이다. 책 크기고 작아서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은 나의 경우에도 한두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점을 달리 생각하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참신하지 않고 익숙한 내용,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서 읽기가 빨라졌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저자가 초기에 활용할만한 독서법을 이야기하면서 자, 샤프, 3색 볼펜, 형광펜, 포스트잇을 이용한 '메모하며 읽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사서 봐야 하고, 그게 부담되면 헌책방을 이용하는 것을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 e-book 시대에 시의성을 담지 못하고 있고, 책을 사야 하는 부담감이 헌책방이라고 달라질까 싶기도 하다. 독서 자본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자본금은 개인마다 수준이 다르지 않은가.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작가는 책에서 다독에 대한 장점을 서술하는데 본인의 사적인 경험을 더 밝히면 좋았을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거나, 생각하는 힘 사고력이 길러진다는 내용은 이미 다른 도서에도 많이 나오는 부분이다. 이런 것 말고 내 경험 때문에 다독을 해 보니 어떤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식의 서술이 나왔으면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작가는 충분히 차별성을 가지는데, 그만큼 내용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어쩌면 질적 향상도 충분히 본인의 경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1,000권 이상을 읽어냈을 때 중급자라고 말한다. 양적 수치와 질적 수치를 그렇게 대비시키는 게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가지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하루에 50권 정도의 책을 읽을 수도 있다며, 읽은 책의 권수가 늘어나면서 중복되거나 아는 내용은 건너 뒤고 읽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1권의 책을 꼼꼼하게 읽고, 49권은 바람 같이 읽는다는데 이게 과연 효과적일까. 마냥 비판하기보다는 유효성에 대한 시도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들었다는 것은 일단 어느 정도 흥미를 당기는 대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또 다른 부분이 118쪽이다. 1장 다음에 2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10을 보고, 그다음에 17, 그다음에 30을 보면서 내용의 일관성을 파악하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은 바로 144부터 나오는 <책의 한계를 이해하자>이다. 작가의 오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작가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고, '필드가 주는 힘'이 없는 책이 많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작가가 자신의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사실 이 책은 독서법에 대한 색다른 내용보다는, 다독에 대한 명분을 설명하고,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우리가 알던 내용을 정리하는 수준이며 구체적이기보다는 관념적인 사실들로 독서를 권장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경험담을 더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작가에게 '책을 읽으면서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때 언제 그만 읽으면 좋을지, 업무량이 늘어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기 힘들 때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꺼내 책을 읽어왔는지, 서점에 원하는 책이 없을 때 책을 구하는 방법이나 아주 사소하지만 책상에 앉아 읽는다고 했을 때 추천할만한 자세법, 작가가 직접 쓴 논평이나 인용, 본인이 형광펜으로 줄을 치며 읽었다면 그 사진을 보여준다든지' 이런 것들을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의 초점은 나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책을 읽고 나면 잡생각을 못할 정도로 독서에 몰입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에 대한 답은 구하지 못한 셈이다. 요컨대 쾌감, 해답, 지식, 아이디어 이런 관념적 단어들로는 구미가 당기지 않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 어른들보다는 학생들, 또는 거의 독서량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읽으라 권할 만 했고, 기존의 독서법을 많이 접해본 독자에게는 신선함이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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