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의 시
이상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3월의 시

 

지난 겨울에는 가끔씩 시를 썼는데 봄이 온 후로 시집도 펼쳐보지 못했다. 일이 바빠서일수도 있고, 봄이 오면서 춘곤증 때문에 잠이 늘었던 탓도 있다. 뻔한 핑계지만 시집을 읽을만큼 여유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요즘 출판되는 시집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모 시인의 신작이 나왔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13월의 시>라는 시집을 만나게 되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된 시집만 사던 나에게 이 시집은 여러모로 독특인 인상을 주었다. 디자인이며, 작가, 출판사 모두 처음 만나는 대상이라 설레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또 제발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며 첫 번째 시부터 차례로 읽어내려 갔다.

 

이 시집의 표지는 꽤 두거운 하드보드 재질이었는데 표지 안 쪽에는 이상규 시인의 약력이 적혀 있다. 이상규 시인이 <세종학당>의 설립에 공헌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알고 보니, 나의 건너 지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약력을 읽고 나서 내가 알던 분이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무튼 내가 아는 이상규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든 생각은 일단 동시를 읽을 때 느낌과 같은 느낌을 주는 시들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비밀, 청각 장애인, 연필로 그린 흰 꽃, 마이다스의 손, 북소리, 안녕하세요 등 적잖은 시들이 마치 동시집을 읽는 것 같이 다가왔다. 대부분의 시들이 자연친화적이며, 친근한 시들이 주류였다. 그리하여 일상 속에 있을 법한 장면들이 연상되면 쉽게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신선하거나 독특한 주제가 없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시에서 기대하는 낯섦이나, 도발, 시어에서 다가오는 이질적임이 극히 드물었다는 점이 작가의 색깔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의 취향과는 좀 차이가 있는 시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집을 읽기 전에 이 시인이 얼마나 말장난을 잘 하는지를 눈여겨 보는데 말 장난이라고 보이기에는 동요나 동시 같이 의성어, 의태어가 많았기 때문에 별로 감탄스럽진 않았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은 시는 책의 제목과도 같은 "13월의 시"이다. 다른 시와는 성격이 달라보이는 유일한 시라고 할 수도 있고, "단어에 익숙한 한 사람이 단어 옆에 단어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는 구절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냉철한 느낌도 들고 "13월의 시를 찢는다"는 시구절에 반해, 또 다시 이번 시집의 제목을 "13월의 시"라고 지은 것에서 모순이 일어난 것이 흥미롭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집은 전반적으로 나이가 더 들어,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이 익숙할 때, 독특하고 신선한 감상보다는, 따뜻하고 안정적인 감상을 추구할 때 읽으면 좋을 법하다. 처음에 기대하던 설레임 같은 것들이 장을 넘기면서 조금씩 사라졌지만 또 시집은 음식처럼 각자의 취향과 기호가 있는 것이니까 다른 독자에게는 감동스러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