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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평점 :
무라카미하루키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다. 번역 문장이 아닌 원래 문장을 읽고 싶어서 일본어도 배웠는데 아무래도 하루키만의 색깔을 읽어내기에 버거운 부분이 있었고, 결국 다시 번역서를 찾기 시작했다. 이번 <애프터 다크>의 경우 <어둠의 저편>이라는 소설을 다시 출간한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최근 단편집에 치중한 듯이 연일 단편집 출간으로 인해 그의 긴 호흡이 기다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호흡에 응답이라도 하듯 이 책이 재출간되자마자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나는 설렘 반, 아쉬움 반으로 내내 두근거렸다.
이 책은 소설의 3요소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하루키라는 감탄이 나온다. 사람의 주름살처럼, 사람의 목소리처럼 문체도 변한다. 그의 오래된 문체와 표현에 반했던 나는 이미 두 페이지에 적힌 '밤하늘과 싸늘한 공기, 지나치는 행인'에 대한 묘사에서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소설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에 대한 작가의 서술이 어렵지 않아 쉽게 읽을 만하다. 이 책에 목차 페이지는 없지만, 목차 명을 일일이 살펴보면 시간(예: PM 11:56)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책은 밤 11시 56분에 데니스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다음날 6시 52분까지 이어진다. 주인공은 언니 에리와 동생 마리, 두 자매이다. 20페이지에 데니스에서 다카하시와 동생 마리가 나누는 대화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왜 우리는 다들 각자 다른 인생을 사는 걸까?" 이 대목은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은 두 자매가 다른 인성과 다른 성격을 가졌고 우리는 그 성격과 그녀들의 가치관, 엄밀히 말하면 밤 시간을 통해 그녀들의 행적을 쫓는다. 소설 속 '애프터 다크'라는 용어의 첫 등장은 바로 <블루스엣>이라는 재즈 레코드 엘피의 A면 첫 곡 <파이브 스폿 애프터 다크>라는 곡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키워드나, 의미심장한 단어는 어절 단위로 하여 진한 폰트로 써놓고 있다. 그 지점을 따라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다.
<애프터 다크>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중간 줄거리 중에서 마리가 중국인들과 스치는 상투적인 부분이나 에리가 오랜 시간 잠들어 있는 부분이 모호하더라도 다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마지막 문장은 '밤은 비로소 막 끝난 참이다. 다음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이다. 한국소설 윤홍길의 대표작 <장마>의 마지막 문장이 연상되었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라는 문장 말이다. 거기다 하루키의 <애프터 다크>는 한 문장 덧댄 것 같다. 마치 다음 어둠이 기회라도 되는 듯이. <애프터 다크>를 읽으며 나는 결핍되어 있지만 애처롭지 않은, 막막하지만 막연하지 않은 누군가의 밤 시간을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지켜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개운하지만은 않았지만 또 먹먹하지는 않은 오묘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