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주름


몇 해 전, 방송사에서 일하던 시절 박범신 작가 인터뷰를 하러 명지대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박 작가를 보고 책의 저자소개에 삽입된 사진과 실물이 똑같아서 놀랐고, 말투와 성품에 또한번 놀랐다. 그의 수려한 문장은 단연 인품과 고집에서 나온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볼 때면 완벽하진 않지만 누구에 뒤지지 않는 삶의 애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장편소설 <주름>을 통해 본질적인 삶의 문제를 신랄하게 서술하는 그의 필력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었다.


<주름>의 첫 페이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생이라고 이름 붙인 여정에서 길은 그러므로 두 가지다. 멸망하거나 지속적으로 권태롭거나.’ 나는 사실 이 대목만으로도 책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졌다. 지속적으로 권태롭다는 표현에 얼마나 공감했던지 다시 읽어도 감탄할 만하다. <주름>의 첫 시작은 한 남자가 김진영이라는 자신의 가출한 아버지를 찾아 동시베리아 이르쿠츠크라는 도시로 가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김진영은 알고 보니 바이칼 호 가운데 올혼 섬이라는 곳에 있다고 했다. 그가 그곳에 머무는 이유, 김진영이 가족을 버리고 떠나 뜻밖의 장소에 있는 이유는 순전히 천예린 때문이었다. 천예린이라는 여자는 부인이 아니다. 그녀는 김진영이 사랑하는 여자로, 죽기 전에 바이칼이 환히 내려다뵈는 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김진영은 이곳에 모든 것을 팽개치고 떠나온 것이다. 남자는 묻는다. 아버지에게가 아니라 인간 김진영에게 말이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렇게 1장이 끝나고, 이어 2장에서는 김진영의 시점에서 서술되기 시작한다. 마치 1장 마지막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나는, 김진영이다. 라고 시작하는 2장부터는 주동인물인 김진영과 천예린을 둘러싼 환경과 세상에 대한 환멸과 낯 뜨거운 시선이 서술되어 있다. 25년 넘게 지속적인 삶에 권태를 느껴 사소한 것에도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김진영. 그는 어떤 형태의 삶을 살고 있었고, 그 삶에 느닷없이 마주친 천예린과의 만남, 이런 둘의 시간과 감정소모, 천예린과 보냈던 날들의 기록이 낱낱이 고백적으로 쓰여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그 무엇보다도 김진영과 섹스를 했던 다방 여자의 증언 부분이다. 벌거벗은 채로 미친 듯이 정사를 나누던 그 격렬한 행위를 주인공은 생의 중심에서 다시 날아오르고자 한 것이라 표현했다. 소설의 끝 부분에 쓰여 있듯 우리가 생이라고 부르는 것의 원형이 어떤 형상의 집 속에 갇혀 있는지 모른다. 작가는 아버지 김진영의 생과 자유를 짚어가면서 아들의 시선에서 혹은 김진영 스스로의 시선에서 사람의 존재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화제를 던지고 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대략적인 줄거리만 언급했지만 여느 소설에 비해 좁고 깊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주름>은 박 작가가 거의 16년여 동안 떠나지 못했던 작품이란다. 집요하게 한 작품을 붙들고 있던 것도 처음이란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름’은 ‘시간의 주름’이었다는 것에서 탄식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모두 좋아하는 것이 아니어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기우였다. 언젠가 읽었던 외국 철학자의 철학서보다 좀 더 고민하게끔 만들어 주는 소설이었다. 넓고 얕게 보다는 좁고 깊게 ‘어떤 생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고달프지만 또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시사점을 끊임없이 던져주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소장 도서로 추천할 만하다.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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