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코끼리
황경신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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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주 다니던 카페가 있었다. 그 카페에는 페이퍼라는 잡지가 시리즈로 쌓여 있었는데 읽다가 메모할법한 단락을 발견하면 항상 그 글을 쓴 사람은 황경신 편집장이었다. 누구나 생각해볼법한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수려한 문장으로 표현해놓은 그녀의 글들을 참 좋아했다. 이후로 황경신 작가로서 내놓은 책들도 꽤 재밌게 읽었더랬다. 2014년 11월 10일 초판 발행된 따끈따끈한 <한입 코끼리> 역시 무척이나 기다려왔던 게 사실이다.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를 포함한 총 19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으며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소개에 걸맞은 가볍고도 진중한 이야기다. 8살 짜리 소녀와 373년을 산 보아뱀의 대화 속에서 환상적인 이야기를 던지고 교훈을 던지고, 감동을 던진다. '나'라는 화자인 소녀를 통해 나 또한 여덟 살짜리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생각이 든다. 순간 내게 어린왕자의 보아뱀이 아닌 동화 속 누군가와 마주할 수 있다면 누구를 골라볼 것인가. 고민해 보니까 그건 또 그것대로 즐거운 상상이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103쪽에서 보아뱀이 소녀에게 달에 대해 묻는 장면이다. "넌 아직 어린아이니까 달에 대해 무지할 테지. 너는 달을 뭐라고 생각해? 달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지?" 라는 보아뱀의 질문에 잠시 발끈했지만 딱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소녀가 상상돼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소녀는 "나는 달을 만져본 적도 없는 걸"이라고 대답한다. 누군가 우리 어른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달을 만져본 적도 없다는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장면의 말미에 보아뱀은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는 그런 소유도 있어. 잡을 수 없어도 볼 수 있는 것. 마찬가지로 볼 수 없어도 마음에 담아둘 수 있는 것도 있지. 이를 테면 기억 같은 것." 그리고 "지금은,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해."라는 말.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이틀이 가는 게 지겹다고 말하던 나를 부끄럽게 만든 대목이기도 했다.


소녀의 입을 빌어 나오는 대사라던지 보아뱀의 대사는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 것이다. 조급해 말고, 동화 속처럼 때로는 환상적으로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꿈꾸며 또 조급함을 줄이고 삶을 설계하라는 책의 주제는 작가의 가치관을 조곤조곤 늘어놓은 에세이 같은 느낌도 준다. 황경신 문체의 묘미는 꽤 두터운, 다르게 말하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독자층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책은 내가 읽은 황경신 작가의 책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재미 있다. 재미의 이유는 유익함도 있겠지만 어른만을 위한 어려운 책이 아닌 어른도 읽을 수 있는 쉬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삽화도 또다른 볼거리이며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한우리 북카페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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