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아가씨 - '요즘 늙은이' 수연씨

1. 만남

수연씨는 우리 앞집, 502호에 산다. 그녀는 늘씬 날씬, 지혜롭고 영리하고 영악한 21살 아가씨이다. 우리가 서로 알게 된 지는 6개월쯤 되었다. 우리가 사귀게 된 것(?), 아니 가끔 카페 ‘빈’에서 만나 나는 ‘아메리카노’를, 그녀는 ‘망고 쥬스’를 마시게 된 것은 약간은 어이없는 일을 둘이서 경험한 후부터 였다.


수연씨는 M구 G동 번화가 한 켠에 자리잡은 휴대폰 기타 전자 제품 대리점 직원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아이폰이나 넷북 등의 제품을 실컷 구경할 수 있어서 좋을 듯했으나 실은 그녀는 컴맹 수준이었다. 카카오톡이니, 쇼셜 네트워크니 하는 것이나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말 줄인 단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늘 쓰지는 않았다. 그녀가 사용할 줄 아는 휴대폰 기능은 문자 보내기와 통화 뿐이었다. 아니 다 활용할 줄 알면서도 내 앞에서는 못하는 것처럼 꾸미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 젊은이답지 않다는 내말에 그녀는 요즘 젊은이라는 말에는 ‘똑 같은’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서 싫다면서 아이폰이니 넷북이니를 통달해야 요즘 젊은이고, 관심이 없어서 그냥 몇 가지 도구로만 사용하는 자기 같은 사람은 『요즘 늙은이』라도 되느냐고 했다.


수연씨는 보통 키에 평범한 외모다. 남의 집 딸내미의 외모를 자세히 묘사하기는 그렇지만 간단히 묘사하면, 키는 160정도?, 몸무게는 50킬로 정도(아마도 58킬로인 누구보다 8킬로 정도는 덜 나갈 것 같아서 짐작하는 몸무게이다)?. 얼굴은 그냥 예쁘장하다고 보면 된다. 하여튼 그녀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왜냐 물었더니 요즘 고졸자 80%가 대학 가는데 굳이 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같지도 않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서, 대학생이랍시고 1년에 천만원씩 등록금에, 용돈 써가며 세월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단다.


부모 고생도 마음을 짓눌렀다고 했다. 대학 안가기로 하니 맘이 편했다고 했다. 대학 졸업했네 하면서 웬만한 곳이면 취직하지, 여기는 밤샘 근무가 많아 싫다, 여기는 월급이 적어 싫다, 안정적인 공사나 공무원이 최고다, 하면서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고 폼 잡고 학원 다니고 고시원 들어가 허송하다가 30살 넘어서까지 부모 등골 빼먹고 싶지 않았단다.


수연씨가 하는 말은 꼭 4~50대 부모가 하는 말과 어쩌면 그리 같은가 싶었다. 누가 일부로 세뇌라도 시켰다는 건가. 부모의 영향일 것이었다. 수연씨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앞집에 살면서 안면을 트지 않았는데 일부러라도 인사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에 이사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였다. 나는 퇴근 후 술자리를 마치고 전철을 타고 있었다. 약간 불콰해질 정도, 소주 한 병 정도 마신 기분에 조는 듯, 안 조는 듯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종각역쯤이었던 것 같다. 흰 브라우스에 감청색 치마를 입은 사람이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감청색 치마는 그 뭐라던가 플레어 스커트? 치마가 발목 바로 위까지 내려오고 허리부터 아래로 내려올수록 치마 폭이 점차 넓어지는 그런 치마!. 아니 70년대 여학생 교복 치마가 딱 맞겠다. 말 그대로 교복 차림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앞에는 스무살 안팎의 아가씨가 있었다. 얼굴을 슬쩍 보니 해맑다. 머리는 단발머리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요즘은 치마 길이가 짧은 것이 대세라는데 참 희한한 아가씨도 있네 하고는 나도 그냥 지하철의 흐름에 따랐다.


1 시간여 동안 전철에 앉아 있는데 예의 그 아가씨도 여전히 내 앞에 서 있었다. 내릴 역이 되자 나는 출입구로 향했고, 마침 그 아가씨도 내리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같은 역에서 내리나 보다 짐작하면서 그녀를 참 인상깊게 머리에 새겼다.


전철에서 내려 집에 가는 길은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였다. 나는 느릿한 걸음걸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지 10년이 넘은 아파트라 나무가 제법 우거져 있다. 어둑한 밤이면 그 나무 사이를 혼자 걷기가 약간 불편하다는 것은 느끼곤 했다. 마침 앞에 사람이 가고 있었다. 나는 바짝 따라 붙었다. 가까이 가 보니 아까 그 아가씨가 걸어가고 있었다. 참 묘하다 집이 이 근처인가 보다 하며 말없이 그녀 뒤를 따라갔다.


우리 아파트 차단문 앞에 그녀가 섰다. 이 아가씨도 나와 같은 동에 살고 있었나보다 생각하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그녀는 5층 버튼을 눌렀다. 아, 이 아가씨가 502호에 사는구나.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그녀와 나는 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는 고개를 돌려 멀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아까부터 저한테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은데요. 죄송한데요. 오늘은 제가 시간이 없구요. 이번 주 토요일 3시에 아까 내린 역 앞 카페 ‘빈’에서 만나요.”


그러고 나서 그녀는 현관 키 버튼을 뚜두두둑 누른 후 문을 열고 재빨리 들어갔다. 찌리릭 현관문 열쇠가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속으로 말했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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