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존재하기 -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경험으로서의 달리기
조지 쉬언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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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나는 전형적인 '책상물림'과 '구경꾼' 인간이다.

학창시절에는 그래도 100미터 달리기든 오래달리기든 달리는 걸 좋아했는데.

교복을 벗고 나서부터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꾸준히 운동한 적이 없다. 게다가 스포츠를 보는 것에도 영 취미가 없다. 나란 사람은 "경기는 결과만 알면 되지" 하면서 야구가 틀어 있는 TV를 드라마로 돌리는 사람. 야구장을 따라 다니며 관심을 가져보려고 해도 경기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치킨과 맥주만 먹다 올 뿐이라, 아무래도 내 안에 친스포츠 유전자 같은 건 없나 보다 확신하기도 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뭐가 나쁜가.

 

그냥 살아갈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나는 내가 운동을 즐겨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건 운동을 해서 살을 빼야지, 건강해져야지 하는 목표를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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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책장을 덮자마자 운동화 끈을 조이고 공원을 달렸었다. 한창 꿈을 쫓던 그때의 나는 성실함이 쌓여 이루어내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고, 그를 닮아 나도 뭔가를 이루고 싶었다(하지만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작년에 마흔 살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껴 <마녀체력>을 읽었을 때는 상황상 바로 달리지 못했지만 '내년에 꼭 5키로 마라톤에 도전해야지'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알게 되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긍정 에너지를.

동시에 내가 결혼생활과 육아생활을 하며 가끔 와르르 무너지는 게 그동안 운동을 즐겨하지 않고 살아온 삶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결혼 전에 운동을 선수 수준으로 즐겨했던 mom이 육아에서도 지치지 않는 것을 봤다. 육아 상황이야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운동을 하며 몸에 밴 긍정적인 태도의 영향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지. 어떠한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는 다른 것을 대할 때도 똑같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최근 명상을 하면서 알았다. 그러니 비약이 아닐지도...

 

그리고 이번에 만난 이 책.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책에서 저자는 끊임 없이 '운동선수 예찬'을 한다.

 

"이 거짓의 시대에, 위를 향한 좌절된 욕망만이 판치는 시대에 운동선수는 뛰어나고 우아하고 고결한 인간의 실례로 남는다. 적어도 정직한 운동선수들은 충분한 자격이 있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진정한 운동선수는 변명하지 않는다. 진정한 운동선수는 자만심이나 선입견 없이 자신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 그는 순위와 상관없이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진정한 운동선수는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능력과 약점을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운동선수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낸다. 부정적인 한계보다는 긍정적인 목표를 통해 건강을 추구한다. 운동선수는 금연부터 하고 훈련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훈련을 시작한 뒤,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운동선수로 살아가는 일상생활 안에 있다. ... 다른 사람들과의 긴장이 어떤 효과를 낳는지, 자신을 자극에 반응하는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상황과 인간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안다. 운동선수는 놀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데 대해 모르는 게 없으며 과거와 미래의 자기 모습을 받아들일 줄 안다."

 

"그동안 너무나 멀리했던 운동선수들의 방식을 익혀야 한다. 운동선수들은 노력을 통해 모든 감정을 풀어놓고 카타르시스를 얻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저자는 '유전자의 산물인 육체가 우리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며 몸 결정론까지 편다.

 

"내 몸을 통해 나는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몸을 통해 나는 한계를 보는 게 아니라 얼마나 충실해질 수 있는가를 본다. 몸을 통해 나는 머리를 짓누르는 과거의 기억과 이뤄질 수 없는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몸을 움직이는 자들은 늘 즐거워한다. 거기에는 놀이하는 재미, 승리하는 재미, 심지어는 패배하는 재미까지 있다."

 

"정신을 뛰놀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몸을 뛰놀게 하라는 말입니다."

 

"몸이 없이 마음이 남아 있겠는가? 동맥만큼이나 빨리 지능이 마비된다."

 

"행동하지 않고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잃어버렸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면 안 하느니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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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물림'인 나는 정신력을 가져야 몸이 따라가게 된다 생각해왔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일 수도. 아니, 그 반대가 더 쉬운 걸 수도. 저자가 말하는 것도 그것인 것 같다. 몸이 움직이면 정신도 따라온다는 것. 저자는 그걸 달리기를 통해 온몸으로 깨닫고 전해주고 있다. 자신처럼 몸을 움직이면서 그걸 통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자신의 참된 모습을 꾸준히 찾아 나서라고.

 

"러너는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달린다. 러너가 되면서, 고통과 피로와 아픔을 견디면서, 스트레스에 스트레스로 맞서면서,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만 남겨 놓으려고 하면서 러너는 자신에게 충실해지고 그대로 자신이 된다."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아직은 '러너'라고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도 어쨌든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린다는 것은 확실히 '걷기'와는 천지차이다. 걷는 것은 언제까지고 가능하지만 달리기는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힘든 만큼 더 충실해질 수 있다는 걸 조금 경험했다. 걷고 있는 공원의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혼자 달리고 있을 때, 내 앞의 길과 달리고 있는 나만 있는 듯한 느낌..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달리기 실전 팁은 아직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진짜 러너로 거듭난다면 다시 펼쳐보며 도움을 받게 될까.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책이 내가 달리는 길과 달려야 하는 이유의 동기가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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