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려 권력 쟁탈기 재미만만 한국사 11
오주영 지음, 박정인 그림, 하일식 감수 / 웅진주니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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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권력 쟁탈기

긴 역사만큼 권력이 여러 차례 이동하였는데 고려 개국 공신이나 큰 공을 세운 뒤 높은 관직을 받고 대대로 높은 관리가 되며 큰 권력을 휘두르고 대대로 넉넉히 사는 집안, 문벌귀족은 자녀가 과거 시험을 보지도 않고 관리가 될 수 있으며 자식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공음전이라는 땅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비슷한 사람끼리의 결혼으로 더욱 더 강한 집안이 되고 최고의 경우는 딸이 왕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심지어 이자겸은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손자인 인종을 죽이려 난을 일으키다 결국 손자에게 제거되기까지 한다. 이자겸 같은 개경출신의 문벌 귀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서경 출신 정지상,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자고 서경출신 묘청 스님과 함께 주장했으나 묘청의 난이 빌미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그 다음의 권력은 내내 무신들에게 무시를 당해 오며 화를 참아오던 무신들이 일으킨 무신 정변으로 무신들의 정치를 비판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했으나 결국 무신들과 다를 바 없이 권력자가 되어서는 재물을 탐하고 타락한 모습으로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 정중부, 문벌 귀족, 무신에 이어 원나라와 친한 자들에게 흔들거리며 원나라의 간섭을 심하게 받아오며 강한 고려를 만들고자 노력한 공민왕은 원나라와 몽골식의 옷차림과 머리를 금지하고 원나라에 빼앗겼던 땅 되찾기 등 고려를 바꿔 나가는데 적극적이었다. 나중에는 신돈이라는 스님을 가까이 하며 개혁을 추진했으나 이를 시기하는 신하들이 모함으로 신돈을 죽이고 그후 3년뒤 공민왕도 신하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어느 한 세력이 커지면 권력을 더 확대하고 자신이 비판하던 세력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전혀 바뀌지 않는 다는 생각을 백성들은 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시대도 고려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자신이 아닌 백성들을 둘러보는 모습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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