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냐 > 참으로 딱한 한국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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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아무리 설득해도 남편은 이 책에 관심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호통재라, 그대가 단지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동굴 속 황제'로 자라나 자기애와 권위주의라는 수렁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한국 남자라는 뿌리를 모르고, 잘난 척 해봤자..당신의 한계는 분명한 것을...마누라, 인생의 동반자로서 당신이 큰 깨우침을 얻을 기회를 박차니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나.
이 유쾌하고 용감한 정치학자 전인권씨는 '한국 남자'를 해부했다. 스스로 과거를 샅샅이 파헤쳐 실험대 위에 까발렸다. 책을 읽고 보니, 어떻게 '한국 남자'가 기특하게 이런 시도를 했나 싶기도 하고, 어떻게 다른 '한국 남자'들은 이런 왜곡속에 자라면서도 저자같은 성찰을 한번도 안하고 사나 싶기도 하다. 쓸데없이 목 뻣뻣하고, 무뚝뚝한 남자들, 그대들의 삐딱한 남성성은 그대들 탓이 아니라 '키워진 탓'이라는데, 한국 남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한국 남자의 이중적인, 혹은 자아분열은 두가지 언어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아버지의 언어', 즉 은사나 선배나 상사, 손님에게 쓰는 존댓말. 내 마음의 진실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존경과 복종의 언어다. 반면 '어머니의 언어'는 형과 동생, 친구, 후배에게 쓰는 반말이다. 진실에 가깝고 내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소통의 언어이지만, 아버지가 나타나면 일순 거두어야 하는.
이런 자아분열은 권위 속에서 허망한 한국 남자의 일생과도 묘하게 맞물린다.
권위 그 자체인 '아버지'는 사실상 껍데기다. 결혼은 사실상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서 더 완벽하게 구현된다. 성적 측면에서 '내외'하는 아버지보다 아들은 훨씬 풍부한 관계를 어머니와 맺는다. 한 이불속에서 유년기 내내 어머니를 독점했던 이 아들은 모든 욕망을 달성한 행복한 오디이푸스였다. 더구나 돈을 벌어오는 것은 아버지이되 풍요로운 소비는 어머니와 아들의 몫이었다.
현대 권력은 형식적 지위나 신분 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아버지는 권위만 높을 뿐 실제로는 완전한 무권력자다. 환갑과 칠순을 넘기고 경제적 역할마저 축소되니 집안의 왕따 신세가 되는게 아버지다. 반면 어머니와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통속이 된다고 한다. (남의 일 같은가?)
하지만 유년기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빼앗던 한국의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아들이라는 '신분의 감옥'에 갇히는 것은 '지아비의 감옥'에서 뻣뻣하게 굴어야 했던 아버지와 다를게 없다. 어머니의 사랑 속에 '동굴 속 황제'가 되었던 아들은 아무리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를 떠들어봤자 황제 기질을 버리지 못한다. 어머니의 사랑 속에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마련이다.
이런 과정에서 남자들은 삶의 패배자가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남자인 W는 이 책을 빌려주며 너무나 공감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여자인 나로서는 남자들이 좀 딱하기도 했다. 워낙 '여성해방'이란 결국 '남녀 해방'이라 주장해왔지만. 아직도 '한국 남자'들은 갈 길이 멀지 않나 싶다. 여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자기들끼리 모여 서열과 계급을 정하고, 이번엔 내가 왕을 할테니, 다음엔 네가 하라고 약속하는 병정놀이 같은 '제사'나 지내면서...남자들은 복종이나 권위 따위가 세상의 전부인줄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여자인 나로서는, 아들을 키우는 나로서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희생하며 얻은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