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말들
천경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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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에세이집을 만났다. 아껴두고 차근차근히 소화하고 싶었다.
책을 받은 날로부터 약 2주 가량 그러려고 노력했고, 다 읽고 나서는 마음에 여운이 맴돈다.

인간이란 존재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진정한 소통과 공감.
이런 가치가 소중하다고 말하는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미술이라는 영역으로 형상화한다.
작가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에 살고 있는
낯선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사진과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구현한다.

제목 '보이지 않는 말들'은 하나의 프로젝트 이름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전체 퍼포먼스를 관통하고 있다.
(특히 난 이 챕터가 좋았다. 보이지 않는 파이프에
의미있는 문구를 새겨놓고, 이것들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파이프를 따라 그 마음이 전달된다는 발상이, 그리고 그것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든 힘이)
작가가 익숙한 곳 또는 낯선 환경에서 사람들을 모아 이루어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작가와 이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 참여하는 자들 사이. 이들은 분명 보이지 않는 말들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손을 잡기, 서로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맞추기, 상대방에게 밥을 먹여주는 행위들이 퍼포먼스로 등장한다. 그저 놀라웠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으면 어색한 기류만이 맴돌 것 같은데, 그 사람들과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특별하게 여겨질까.
아마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쭈삣거리지만 이내 진지한 자세로 작가의 물음에 마주한다.
작가의 물음은 곧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확인한다.

"당신은 지금 카메라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Being a Queen, 54-55p)

작가가 서술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작가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참여하지만, 곧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경험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의 내용도, 그에 대한 대답도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와의 만남이자 대답할 때의 나를 자각(自覺)하는 시간 그 자체이다."
(100개의 질문들, 29p)

이 말처럼 나는 과연 나 자신을 자각하는 시간을 얼마나 가졌으며,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가.
때로는 내 속에서 드는 감정이 어떤 원인에서인지, 왜 해소가 안 되는지 답답해하기도 했다.
이건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타인의 욕구를 알아차리는데 둔감한 나는,
자신조차 생각할 여유를 두지 않고 살았음에
깊이 반성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혹은 주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작가의 노트는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작가의 생각과 교감할 수 있게 한다.

챕터 별로 좋은 구절들이 많았다.
작은 화면에 갇혀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이미 적응하며 사는 우리들.
타인의 생각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미 익숙하다. 그러나 익숙하기에 그 중요성을 종종 잊게 된다.
작가의 노트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의 교류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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