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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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이진숙의 ART BOOK 깊이읽기 <4>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

이진숙 kmedichi@hanmail.net | 제192호 | 20101114 입력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sunday.joins.com/article/findReporterIDnew.asp?reporter=/Article/@reporter"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
백제금동대향로
“살아보니 옛말 틀린 게 없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겨우 옛말이 옳다는 것이나 증명하기 위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죄악이 아닐까?그런데 최근에는 “옛말이 더러 옳을지도 모른다”고 수위 조정을 하게 됐다.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옛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 미술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면서부터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 현대 미술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체성 확보다. 세계 미술시장에 통용될 한국 현대 미술의 마케팅 포인트가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컨대 중국 미술은 ‘정치적인 팝’이라는 말로, 일본 미술은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재패니즈 팝’ 혹은 요괴주의적 특성으로 세계 미술시장에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기본 개념을 근거로 다양한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개별 작가들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전체로서 한국적 미감을 일목요연하게 전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 현대 미술이 봉착한 문제 중 하나다. 미술 평론가들도 수입 담론에 맞추어 우리 미술을 설명하는 데 급급했지, 우리의 고유한 미감(美感)을 발전시키는 데는 게으르지 않았던가 하는 반성을 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고유한 미감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고리타분한 일처럼 여겨졌다. “나에게 한국미술은 서양미술처럼 낯선 것이었다”는 한 젊은 작가의 솔직한 말은 충격이었다. 그리스 석고상을 열심히 그려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우리 미술교육의 현실이니 이런 말이 나올 만하다. 외국에서 서양미술사를 먼저 익힌 나도 그 미감의 기본이 어디에 닿아 있는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감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감각이 있는 사람은 예외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지속적인 훈련을 받아야 하며 노력해야 된다. 이런 의미에서 유홍준의 '한국미술사1'(눌와, 2010, 2만8000원)은 아주 반가운 책이었다. 1969년 김원룡의 책 이후 40년 만에 나온 한국미술사 통사인 이 책은 ‘한민족 고유의 고전적 미적 가치’가 역사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을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이번에 나온 1권은 선사시대부터 발해까지 다뤘고, 2권에서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3권에서는 조선시대를 다룰 예정이다. 2012년까지 완간을 목표로 한다.

저자는 중국과 일본 등 인접 국가와의 비교 즉, ‘동아시아 미술사 시각’에서 한국미술을 바라본다. “한국이 빠진 동아시아 문화사는 불완전한 것이다.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당당한 지분을 가진 문화적 주주국가”라고 서문에서 말한다. 세계 경제 14위의 대한민국에서 이제야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이 사실 부끄럽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천덕꾸러기처럼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일까? 아름다움의 향유를 경제적 상황 때문에 미루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패배자들의 논리다. 일제 강점기 때 이식된 문화적 패배의식, 열등의식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한국미술의 고유성을 드러내기 위해 기존 미술사와는 다른 서술 방법을 택했다. 한반도에 인류가 거주했던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감은 주어진 자연환경과의 투쟁 속에서 형성된다는 논리다. 또 건축·회화·조각·공예로 나누는 기존의 기술 방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한국미술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도록 고분 미술과 불교 미술의 두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우선 보았다. 볼 만한 책이었다. 언급된 작품의 이미지를 대부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지식은 생생한 감각의 힘을 얻는다. 체계적으로 분류된 도판은 고유한 미감을 시각적으로 전한다. 청동기 시대의 굽다리 접시, 날아갈 듯 살포시 앉은 원삼국시대의 주머니 항아리, 듬직해 보이는 세발원통모양단지, 가야의 긴목항아리가 가지고 있는 조형미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아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대규모 고분군들은 대지미술을 연상케 한다. 상세히 소개된 고구려 고분 벽화의 화려한 세계는 또 어떤가.

압권은 1993년 발굴된 백제금동향로다. 눈앞에 있는 것처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고분과 산성 부분을 읽고 나면 무너진 돌 더미들도 예사로 보이진 않을 것이다.
한국미술을 저자가 어떻게 느끼고 묘사하는가도 관심사였다. ‘고구려의 강인함, 백제의 우아함, 신라의 화려함’은 저자가 요약한 “역사 속에서 이룩한 한민족 고유의 고전적 미적 가치”다. 저자는 삼국 미술의 백미로 백제의 문화를 꼽았다. 이름하여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6040>)’,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무릎을 딱 치게 하는 대목이다. 날 선 모서리를 깎아내고 미묘한 경계에 설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세련된 경지다. 이 폭넓은 규정은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미감 형성의 기초가 될 만하다.

백제의 미학은 통일신라로, 고려로, 조선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우리의 DNA 속에 깊숙이 저장되어 있다. 원삼국시대의 주머니 항아리의 날렵한 선은 외씨버선에서, 기와지붕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단 하나의 선이지만 우리의 미감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나는 이런 미감들이 현대에도 계속 발견되길 원한다. 그래서 “한국적이되 편협하지 않고, 세계적이되 뿌리를 잃지 않는다”라는 평가를 한국 현대 미술이 받기를 바란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고구려 유주지사 진의 무덤 벽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작게 그려진 시종들의 모습에 관하여 원근법 구사의 미숙함, “3차원의 인물을 2차원의 평면으로 옮겨본 경험의 부족”을 지적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람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작게 그리는 것은 단순히 ‘서투름’이라는 평가를 받을 요인은 아니다. 르네상스식 원근법이 발견되기 이전의 서양회화에서도 등장하는 요소다. 르네상스의 근대적 세계관과는 다른 세계관에서 기인하는 형상화 방법이다. 시대별로 다른 형상화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미술사의 요체라는 면에서 보면 그렇다.

나는 이 책을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한국적 미감을 세련되게 훈련하고, “내가 생각하는 한국미는 이런 것이다”고 자유롭게 말하고 제멋대로 상상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비어 있는 가야사와 발해사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 현무도와 천마도를 현대 미술의 언어로 옮기고, 다중롤플레잉 온라인 게임의 단초를 찾아내고, 3D(3차원) SF 영화의 모티브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시공간을 초월해 문화와 문화가 만나고 코드화되는 시대인 21세기에 생산적 원천이 될 낯설면서도 친숙한 한국 옛 미술에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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