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더 로드"라는 영화를 봤었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원작이 있는 그 영화가 얼마나 절망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는지, 본 사람을 잘 알 것이다. (비록 결말은 희망을 약간이나마 보여주는 것으로 끝났지만... 글쎄.) 그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무서웠던 건, "언제나 픽션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었다. 즉, 현실은 언제나 픽션보다 더 잔혹하고 비정하다. 언제나. 특히, 이 영화를 볼 당시에 아이티에서 지진이 일어났었는데, 폭동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면서, 현실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게 됐다. 그래서 "더 로드"라는 영화가 보여준 세상은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이 책을 보면서 "더 로드"가 계속 머리 한켠을 차지했는데, 그건 이 책이 "현실이 더 잔혹하다"는 극명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르완다 내전(이 아니라 "르완다 대학살"이 더 맞는 말이다)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 정도로 잔혹하고 철저하게 살해당했다는 건 알지 못 했다. 그리고 이런 두 부족간의 대학살은, 결국 정치인들의 권력을 위한 음모에 의해 자행됐다는 것 자체도, 몰랐다. 아프리카의 부족간의 다툼은 거의 이런 식으로 '정치인들이 권력을 갖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장'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아프리카만큼 격렬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지역갈등을 대입하면서 읽은 건 나뿐일까?

저자가 생각하는 아프리카가 뱀파이어의 땅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사실 원문 제목 "The Shackled Continent(족쇄가 채워진 대륙)"에는 뱀파이어는 안 들어가 있긴 하다) 바로 권력을 위해 모든 악행을 자행하는 정치인들이다. 물론 후반부에 살짝 언급하는 대로, 식민지를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서방인들의 의도적인 부침 때문에 부족 갈등이 일어나고 아프리카가 가난해진 것도 맞는 말이라고 보지만, 저자는 가장 큰 원인을 악한 정치인들이라고 본다. 이 부분에서도 난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물론 정도와 깊이의 차이는 있다. 아프리카의 정치인들이 자행한 짓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같다고 본다.

인권 어쩌면서 멀리서 떠드는 건 언제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현지의 상황을 알고 맞춰서 할 수 있는 방안을 말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인권은 중요하지만 인권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일단 아프리카에 사람이 살아있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악재를 다 이겨내야 하지만. 그리고 이제까지 수많은 원조에도 여전히 숨 넘어갈 것 같은 사태긴 하지만 말이다. 참혹한 상황일수록 인권을 세워야 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프리카는 그럴 단계가 아니다. 물론 인권 그러니까 좀 거창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근로조건 등을 말하는 것이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근로조건을 어떻게 같게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바로 그런 면이 아프리카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보는데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다. 일단,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공기가 있어야 한다. 근무조건 등의 인권이 아니라.

하지만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자유 경제 부분이다. 물론 저자의 말도 맞다. 자국의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에서 돈을 들여 사주면, 그 돈 자체가 소비자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말이다. 통계를 봐도 자유경제가 더 경제발전을 시켰고. 하지만 자유경제를 할 경우, 자국의 농산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자유경제라는 구호 아래 그냥 흘러가게 놔둬야 되는 부분도 있지만, 난 아닌 부분도 있다고 본다. 물론 이쪽은 몇 페이지로 넘어갈 부분은 아니긴 하지만.

저자는 아프리카쪽에 있으면서 겪은 일이나 생각한 것을 이 책 한권에 담아서 말하는데, 사실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고 본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을 전달하는데는 충분했다. 아프리카가 무지개와 뱀파이어가 공존하는 땅이라는 것을. 무지개가 더 커지기 위해서는, 족쇄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저자가 언급한대로 여러가지(특히, 썩은 정치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렇게 두껍지 않은 책치고 세밀하게 다룬 부분이 있는데, 저자가 다룬 모든 부분을 일일이 다 설명하긴 힘들다. 보통 이런 책은 한 번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지만, 읽으면서 생각했던 부분을 들춰내기 위해 다시 들여다보는 게 매우 피곤할 만큼, 이 책은 절망과 슬픔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 읽고난 지금은 묘한 여운을 주기도 하고.

슬프고, 힘든 책이다. 그리고 다 믿어야 되나, 라는 생각도 사실 안 드는 것도 아니고. (왜냐면 스스로 밝힌대로 저자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기에 상황을 더 날카롭게 파악했다고도 보지만.) 생각이 너무도 직선적이고 말투가 오만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가 떠오르는 부분이 꽤 많은데 (저자는 서울에도 근무한 적 있다) 특히 추악한 독재자를 구원자라고 보고 지지하는 부분이 그렇다. 사실 난 아직도 이해 못 하는 부분인데, 누군가가 그랬다.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하긴, 그러니까 언론통제를 이렇게 하는 거겠지.

꼭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 여러가지 생각은 더 많은데, 다 읽고나니 피곤해서 다른 말을 더 붙이고 싶지 않다.

201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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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
로버트 게스트 지음, 김은수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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