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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평점 :
하루키의 글을 읽다 보면,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20대 초반에 그의 소설과 글들을 읽을 때에는 그게 어디서 오는 따뜻함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소설의 내용은 그 당시에 나에게는 다소 신경증적이고, 외설적이고, 혼란스럽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의 문장들은 나에게 편안함과 휴식을 제공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하루키는 일반적인 예술가와는 조금 다른 성향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시각예술이나 음악, 소설 어떤 분야이든 예술가는 무의식이라는 불확실한 요소와 소통하며 작품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엄청난 에너지와 가능성을 가진 무의식은 사실상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은 그 무의식의 공격성에 매몰되고, 잡아먹히고, 망가지곤 한다.
하지만 하루키는 다르다. 그는 무의식과 아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도 창작의 고통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소박한 일상을 미학화하는 그의 에세이를 보고 있노라면 역시나 아주 건전하고 건강한 유쾌함이 느껴진다. 요즘 들어 하루키의 그러한 긍정적인 기운이 바로 그 자신의 개성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오는 행복의 향기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는 스스로 자신이 집단생활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확실히 사회의 일반적인 표본으로 살아가기에 자신의 개성과 성향이 독특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았다. 가장 자연스러운, 자신다운 방식과 일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리고 소설은 그의 개성화를 실현시켜주는 가장 알맞은 옷이 되어주었다.
특히 획일성이 강조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는 우리들은,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개성을 깎아내고, 잘라내고, 억압하며 세상과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꿔간다. 그것이 불편하고, 부자연스럽고, 불행한 것은 알지만 그것보다 더 큰 '두려움'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자신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하루키의 글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의 그러한 성향이 글에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하루키는 삶에 대한 진지함, 건강한 성실함, 그리고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키면서도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아주 드문 사람이다.
그렇기에 희망을 가져보게 된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잘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품게 된다. 하루키의 글이 주는 따뜻함은 그 소망에서 오는 것 같다. 누구나 하루키처럼 살아갈 수는 없지만 소설을 대하는 좋은 자세는 반드시 글에 배어나오기 마련이라는 그의 말대로, 인생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지려는 자세는 반드시 삶에 배어나올 것이다.
하루키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