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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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영화처럼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흑산>의 등급은 아무래도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부모의 보호? 아래 독서 권장 정도.  중세 마녀 사냥과 이단 사냥의 기사에서 읽었던 것 같은 고문 장면, 피와 살점이 공중에 튀어 오르고 다리가 꺾이어 백골이 튀어 나오고 참수도 모자라 능지처참에 처한 순교자들의 조각난 몸뚱이가 지면에서 튀어 나와 내 동공에 박히는 듯하여 헉 숨이 막혔다. 십자가가 추상화되고 아이콘이 되어 버린 세대에 다시 한번 십자가형의 참혹함을 생각하고 나니 도저히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 수 없겠구나 싶었는데, 순교라는 단어 역시 내게 얼마나 추상적인 말이었는지 다시 한번 몸을 부르르 떤다.  예수의 수난을 동네에 피어나 붉은 장미에서 떠올리는 순진한 서정적인 생각을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진다.

곤장을 맞거나 참수를 당하는 장면 못지 않게 몹쓸 인간들이 여종을 강간하는 장면도 차마 읽기가 힘들었다.  성폭행 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수없이 봐왔건만 헐떡거리는 남성의 이미지 보다 헐떡거렸다라는 말을 소리 내어 읽어보니 그 소리가 더 흉측했다.  대량학살, 홀로코스트 사람이 한꺼번에 수없이 죽었다하는 말에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둔감하다.  100일 동안 르완다에서 90만명이 죽었다는 사건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90만 개의 살인사건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  그래서 그런지 90만명이 죽었다는 말보다 한 천주교인이 참수를 당해 몸이 두 동강 났다는 말이 더 참을 수 없게 들린다.  잘린 신체를 주제로 작품을 하는 작가들의 잘린 몸이 악몽처럼 떠오른다.  이런 참을 수 없는 이생의 지옥은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처절하게 현재진행형이었다.

죽음은 검은색이다. 정약전은 흑산의 자가 너무나 무시무시하여 자로 고쳐서 자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흑산도의 여러 해양생물의 모양과 생태를 적은 책인 <자산 어보>이다.  이 책의 두 축은 흑산도에서 살아가는 정약전과 죽음으로 향해 걸어가는 정약전의 조카 사위 황사영이다.  정약종은 순교했으나 정약전과 정약용은 배교한다.  배교는 삶의 연장이었지만 흑산에서의 검은 삶이다.  검은 바다 검은 고기들, 그리고 뭍에서 들려오는 배교하지 않은 자들의 죽음의 소식들.  죽음을 거스르기 위해 정약전은 순매라는 과부와 결혼하여 몸을 합하고, 살아있는 바다 생물들을 검은 묵으로 적어 내려갔다.  배반으로 살아 남았지만 죽은 동생에게 천주교를 전한 정약전의 삶은 살아 있으나 산 것이 아닌 죽음과 삶의 중간 지대, 난처한 가여운 삶이다.  살 수 없는 자리에서 살기로 결심하는 어쩔 도리가 없는 삶이다. 

살아 남은 자도 시대의 야만에 숨막히고 , 죽은 자들은 그 야만의 희생양이 된다. 살과 피가 터져 공중에 퍼지게 하는 곤장으로 실신하여 죽거나 벌레에 먹혀 죽거나 목이 잘려 죽는 자들에 대한 작가 특유의 단순하고 명료한 묘사들.  잘린 목이 말뚝에 달리고, 잘린 몸들은 어느 목의 몸인지 분간 할 수 없는 그 엽기적인 혼란. 무엇이 그토록 사람을 야만스럽게 하는가 결국 종교전쟁이 아니던가.  사학이라고 일컬어 지는 크리스트교와 아비와 군주를 숭상하는 유교의 싸움.  살기를 원하는 인간의 성정을 넘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의 힘은 망나니의 칼을 무력하게 한다.  죽는 자도 죽이는 자도 모두 미친 미궁에서 빠져 나올 살아날 희망이 없다.  문득 목이 잘리는 사람보다 목을 자르는 사형 집행인 망나니를 생각한다.  맨 정신으로 살 수 없는 그 잔혹한 직업을 유지하기 그는 술을 마시고 입을 술을 품어내며 춤을 춘다. 더럽고 힘겨운 형 집행은 죽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에게 맡기고 무참히 사람들을 죽이는 권력자들은 망나니 보다 더 교양 있게 잔혹하다.  대비의 숨 넘어가는 자교는 계속되다가 결국 대비도 쓰러진다.  죽이는 자나 죽임을 당하는 자나 모두 죽는다.  서로 같은 길을 간다.

이 책은 인간이 얼마나 인간답지 못한가를 묵묵히 보여준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작은 희망은 늘 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다.  황사영의 맑고 총명한 정신, 별만큼 맑고 밝은 아내 명련, 평생 말과 순수하게 산 마노리가 주막 하나 차려 살고 싶은 마음도, 동생을 순교하게 만들었으나 아리를 보고 염탐짓을 그만 두는 양심선언을 하는 박차돌의 마음도 전혀 들리지 않는 무음 상태의 참담함일 뿐이다.  그러니 이 참담한 마음으로 책을 덮으며 인간답지 못하게 사는 200년 후의 모습을 본다.  전교 1등을 하는 것도 모자라 전국 1등을 하라는 어미의 목에 망나니처럼 칼을 꽂은 고3 남학생이 8개월이나 그 죽은 엄마의 썩어 가는 몸과 살았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인간답지 못함은 여전히 모양새만 달리 하여 계속되고 있다.  몸이 떨린다.  그러니 나는 인간답게 살고, 다른 이들이 인간답게 사는 것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다른 이에게 우리 같이 인간답게 살자고 말을 건내며 손을 내밀며 살겠다고 거듭 거듭 나의 신에게 약속하고 그리 살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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