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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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노력 신화가 깨지면서, 누군가의 성공이나 쉽게 할 수 없는 탁월한 행동들이 대다수 유전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힘을 얻고 있다. 온 국민이 대학 입시에 관심 갖는 우리나라에서는 공부와 관련한 콘텐츠에서 이런 생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꾸준히 앉아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 자체도 노력이 아닌 유전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다는 자조적인 댓글에서부터 다른 분야에서는 타고난 재능을 인정하면서 왜 공부에서는 노력을 강조하냐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비판까지, 노력에 대한 불신과 유전자 결정론적인 생각이 지배적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개인의 적성과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모두가 대학 진학만을 위해 노력해야 했던 사회였기에, 유전자 차원의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나의 의지와 노력이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탈출구로 느껴진다. 하지만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인간의 자유 의지를 문제 삼게 된다. 우리의 수많은 무의식적인 행위들이 실상 유전자에 의해 지배된다면(p. 17), 인간에게 자유란 있는가? , 현대 과학의 연구 결과가 맞다면, 자유 의지가 없는 개인의 행위에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은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고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신에서 찾았던 중세와 신에게서 벗어나 인간 이성이라는 독립적인 지위를 발견했던 근대에서도 다루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중세근대에서는 초월적인 신, 만물에 적용되는 자연법칙(물론 우리가 아는 근대 사상가들은 자연법칙이 신의 법칙이라고 생각했다)과 인간 자유 의지의 조화가 문제였다면, 현대에서는 인간을 이루는 유전자와 자유 의지의 조화, 즉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한 여러 이해를 조화시키는 게 문제가 된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질문을 생각하는 단초 역할을 해준다. 왜냐하면, 유전자 결정론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유전자가 인간의 행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지금까지 미쳐 왔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가정, 사회, 경제, 정치, 의학, 종교라는 6가지의 큰 주제를 다루면서, 인간이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경제 제도나 사회제도에도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힌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최신 과학 연구를 체계적으로 습득한 한국인 저자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서구를 중심으로 학문이 발전되고 연구되는 현실에서, 서구인을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와 일상생활의 예시들은 잘 와닿지 않고, 항상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물론 저자가 인용하는 이론과 연구 데이터들이 여전히 서양 중심적이고 서양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문화권이 많기에, 정치적 보수와 진보를 유전적으로 설명하는 부분 등에서는 의문이 생기긴 했지만, 저출생, 학력 인플레이션, 정치적 양극화와 같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유전자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과학은 현실 세계에서의 관찰과 실제 데이터(증거)를 기반으로 엄밀한 검증을 거쳐 이론을 구축하며, 그 이론에 대한 반례가 제기될 경우 그 이론을 다시 검증하여 잘못된 이론은 수정폐기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적이거나 수학적이라고 하면 일단 신뢰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과학 이론은 잠정적 결론이며, 관찰과 이론의 근거가 되는 통계들은 필연성이 아닌 개연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이 책에는 가난하거나 불리한 계층의 사람들이 보수적 정책을 지지하고,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서 진보적 사고방식이 더 자주 발견된다.’(p. 140-144), ‘부유한 가정에서는 아들에게 더 많은 돈을 물려주는 반면 가난한 가정에서는 딸에게 더 많은 유산을 물려줄 것으로 예측된다’(p. 34) 등의 통계적 결과들이 많이 인용되는데, 이를 필연적인 사실로 여기고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가령 요새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를 많이 뽑는다는데, 보수를 뽑은 사람들은 가난해서 뭘 모르니까 그러는 거야라는 식으로 말이다.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 양식과 삶을 결정하는 만큼, 그 사회의 문화나 비유전적 요소들(, 제도 등)은 특정한 개인을 형성해 낸다. 이 책에서는 경제, 정치, 종교와 같은 사회적 요소를 유전적으로 설명하긴 하지만, ‘왜 그런 경제 제도가 확립될 수 있었는가?’, ‘유전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면 인간도 동물처럼 몇천 년의 역사 동안 거의 변화가 없어야 하는데, 왜 인간은 역사적문화적으로 차이를 보이는가?’ 등과 같은 근본적인 차원의 물음은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인용되는 연구 결과를 무조건 신뢰하여 그대로 현재에 적용하고, 재단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만 피한다면, 이 책은 인간 이해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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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수록 풍요롭다 -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제이슨 히켈 지음, 김현우.민정희 옮김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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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다수 경제, 발전, 성장 등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GDP가 정확히 어떻게 측정되는지 모르더라도, 각 나라의 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어떠한 지표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 ‘국가 경제=GDP’라는 인식 때문에 GDP는 매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연초가 되면 각 국가는 목표 경제 성장률을 정책으로 내세울 정도다.

  우리 경제는 왜 발전해야 할까? 왜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GDP 성장이 옳다고 생각할까? 환경 파괴를 비롯한 인간소외, 물질만능주의 등의 문제점은 끊임없이 지적되어왔지만,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재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해결책을 모르기에 회피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자본주의가 옳지 않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이걸 대체할 방법이 없잖아?’ 저자 제이슨 히켈은 이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정치경제학, 생태경제학 등을 연구해온 경제인류학자인 그는 탈성장이라는 해법으로 인류를 포함한 전 지구를 되살릴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한다. 그의 연구 분야에서 알 수 있듯, ‘환경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경제, 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활용하였다. 환경 문제로 이 책을 선택했더라도,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그동안 지적되어왔음에도 환경 문제는 왜 진전이 없는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 그 이상의 것을 알아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자본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참혹한 현실을 낱낱이 밝힌다. 베이컨, 데카르트의 이원론사상 덕분에 우리는 자연, 동물, 나아가 인간의 노동을 착취하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 필요한 만큼만 일하는 자급자족의 생활방식과 그러한 의식을 바꾸기 위해 노동을 강제하는 법을 제정하고, 농토와 같은 공유지를 사유지화, 민영화한 역사(소위 인클로저’)를 자세히 알게 된다.

  2부에서는 1부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가 제시한 해법인 탈성장의 구체적인 방안들과 그 이후의 모습을 설명한다. (소위 포스트자본주의’) , 탈성장이 이루어지려면 국가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각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 1부에서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논의의 배경과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면 2부에서는 좀 더 심층적으로,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실천적인 부분들을 자세하게 다룬다.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성장주의growthism. 인간의 구체적인 필요와 사회적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장 자체 또는 자본축적을 위해 성장을 추구하는 것 말이다.’(p. 146) 저자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가 성장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성장 그 자체를 위한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자본주의가 붕괴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 인간의 욕구와 상관없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성장해야만 한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경제는 성장해야 할까? 왜 성장하는 게 좋을까? 결국 이 또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발명된것에 불과하다. 이 체제, 그 당시 자본주의를 원했던 소수에 의해 발명된 개념이다. 이 개념을 당연하게 만들고자 자행되었던 학살, 노동력 착취의 역사는 승자인 자본가들에 의해 잊혔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덕분에 삶의 질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변화해야 할 것은 우리의 경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p. 64) 책을 읽어보면 깨닫겠지만, 기후 위기는 인간의 무한한 착취로만 초래되지는 않았다. 무한한 착취가 직접적인 이유라면, 좀 더 본질적인 원인은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몇 세기 만에 인간 외 존재를 물질화하고, 착취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역사적으로 인간이 아니었던 존재(흑인, 여성, 장애인 등)의 노동력조차 정당하게 착취당했다. , 이런 전체적인 과정을 모른 채 지금의 기후 위기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책은 지금의 기후 위기,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고민이 많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자본주의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1부가 상대적으로 양이 많아, 오히려 후자의 사람들에게 더 흥미로울 것 같다.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인가? 인간의 존재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p. 381)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와 현 기후 위기 사태에 질문을 던지고 심도 있는 논의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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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틸유아마인 언틸유아마인 시리즈
사만다 헤이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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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실패 끝에 임신한 클라우디아, 그리고 클라우디아 집에 고용된 수상한 가정부 조 하퍼.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살해하는' 연쇄 살인 사건의 수사를 맡은 경찰 로레인!

살인범은 누구이고 이 셋의 끝은 어디인가?


인터넷에서 하도 재밌다고 해서 엄청 기대를 많이 하고 봐서 그런지, 기대에 못 미쳐 실망이 컸던 소설이다.
'반전'에 포인트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간 부분쯤 읽다보면 범인에 대해 짐작이 가능하거니와 범인이 밝혀졌을 때도 임펙트가 크지 않아 '엄청난 반전이다!'라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또, 내 생각으로 살인 방법이 좀 황당했다. 이 방법 외에 더욱 효과적이고 치밀한 방법들을 몇 가지 생각해봤는데 확실히 책에서 사용된 방법들 보다는 태아의 안전성 면에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쇄 살인' 사건이라고 하기에 비교적으로 수가 적은 느낌도 든다.


그래도 '추리스릴러' 소설로서는 스토리도 탄탄하고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중독'적인 면에서는 감탄했다!


평소에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듯 싶고, 심심할 때 읽으면 빠져나올 수가 없는 마성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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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결 문학과지성 시인선 457
이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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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침묵'이라는 소재가 많이 사용되고 이와 더불어 '자연'도 꽤 많이 사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태수 시인의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희망차고, 암담한 현실에 대하여 낙담한 듯 하지만 헤쳐나가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암흑과 빛의 경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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