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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1-
나는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하루키의 에세이 중 <예술가로서의 소설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작품은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다음 작품을 기다립니다.’ 라는. 내가 바로 그런 류의 독자이다.
이전작 <다카키쓰구루의 색채>를 읽을었을 때는 결말이 매우 아쉬운 탓에 나는 앞으로 나오는 그의 작품을 기대하지 않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몇번 데였다고 그 사랑이 빨리 식진 않는 것 처럼, 나는 홀린듯 또다시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하루키의 신작을 사버렸다.
첫번째로 예쁜 표지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두번째로 주인공이 읊조리는 과거 소녀와의 사랑이야기가 예뻤다.
(특히나 소녀가 울고만 있을 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주인공 또한 슬퍼하는 장면이 특히나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나에게는 마음아프고 예쁜 장면이었다. )
셋째로 하루키의 판타지는 정말 흥미롭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한번에 다 읽기가 아까워서 잠들기 전에 20분 정도씩만 읽다 잤다.
넷째는, 언제나 그렇지만 나는 하루키의 담백한 글솜씨를 너무나 사랑한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것만 같은 도시의 광경을 글로 써내려간 하루키의 필력은 말할 것도 없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내 그림자와 말을 나눈다? 너무나 매력적인 판타지가 아닌가 !
- 말도 없이 사라진 소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나에게도 전해질 만큼 너무나 진하게 주인공에게 묻어있어서, 나는 주인공이 안타깝다가도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너무나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아무래도 진짜 사랑을 아직 해보지 못했기 때문인걸까? 그토록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불혹이 넘도록 과거만 그리워하는 주인공이 답답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현실에서 다시한번 맞이하게된 도시의 모습들, 고야쓰씨 와의 밀회장면들은 하루키의 판타지 필력이 나날이 더 발전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독자로써 매우 환영입니다.)
특히나 고야쓰씨와 만나는 난로가 놓인 방의 모습은 판타지를 현실로 끌고와 더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나는 그 아늑한 장면의 비밀스러운 대화들을 좋아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고 절대적인 것도 없다. 그러니 진심으로 원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결국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우주고, 우주는 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것.
-내가 도시와 불확실한 벽을 읽고 도출해낸 답은, 결국 과거를 그리워 하며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 온 마음을던져 누군가를 사랑했듯, 스스로를 또한 그렇게 사랑하고 믿으며 살아가라. 그것이 거짓이던 진실이던 내가 믿는 것이 곧 현실이 된다.
-2-
이 소설의 주제는 평소에 내가 고민하던 일과 비슷한 양상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건 과거의 그리움으로인한 미련과 집착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지나간 과거를 좋아한다. 요즘 y2k가 유행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적어도 내가 죽기전에 이 유행이 돌아왔다는 것이 나에게는 꽤나 큰 다행인것이다.
지나간 과거의 영화들, 만화들, 소설들, 사람들 특히나 아날로그시대의 사람들을 퍽이나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가 주인공처럼 기억으로 과거의 도시를 만들어 그 안에 머무를 수 있을리는 만무하다.
내가 그 과거를 추억하고 그 과거에 갇힐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그 과거를 기억하며 그 과거의 유산들 (만화나 소설이나 영화나 관련된 영상들) 에 파묻혀 그 과거속에서 계속해서 헤매이는 것 뿐이다.
우리는 즐거운일도, 해야할 일도 많은데 왜 여전히 과거에 집착하는 것일까. 과거에 대한 병적인 그리움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일지도모른다. 지나간 과거속의 우리들은 안전하다. 좋은 기억들만을 골라서 다시 회상할 수가 있으니. 그 속에서 더이상 나쁜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조심스레 다루어야만 한다. 주인공처럼 그 과거에 파묻혀서는 불혹이 넘어가도록 새로운 사랑마다 저버리고 결국에는 과거로 회귀해버려선 아주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과거란 조심히 다루면 꽤나 좋은 안식처가 되지만, 섣불리 다루다간 내가 그 과거에 갇혀버린다.
결국 기억은 새로운 기억들로 덮히기 마련이다. 하루키는 과거의 구덩이를 자꾸만 파헤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만 과거를 묻어주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 과거를 곱게 묻어 그 위에 예쁜 묘비를 만들어 주고 종종 찾아가 예쁜 꽃과 나의 이야기를 전해주거나 하면 그만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3-
나는 왜 하루키의 신작을 언제나 그리워 하는가? 그건 결국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그 과거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하루키의 신간소설들을 읽을 때면, 주인공처럼 과거로 돌아갈 순 없지만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고 그의 소설을 처음 느꼈던 시절로 돌아간 것만같은 느낌을 받는다. 결국 하루키의 소설이 하나의 도시를 만들었으며 독자인 나는 매 그의 신간이 나올때마다 그의 도시로 돌아가 여행을 한다.
그렇다. 결국 나또한 그의 도시속에 갇힌 독자중 하나인 것이다. (한 둘이 아니지만)
그리움을 주제로 한 하루키의 글에서 하루키의 새 신작에 대한 나의 그리움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 그의 도시로 갈 수 있는 확실한매개인 그의 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다음에 지어질 그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2023의 연말, 새해에 대한 기대감과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일기장에 고이 접어 보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