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진주 > 증인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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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맨발천사 최춘선 ㅣ 김우현의 팔복 시리즈 1
김우현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4년 12월
평점 :
이 책의 리뷰를 쓰기 위해서 나는 적잖은 고민을 했다. 우선 <별을 몇 개나 줘야 하나>에 대하여 고민했다. 내가 쓰는 리뷰라는 것이 전문가의 입장에서 전문적이고도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감상에 의해 내가 보고 좋았다. 덜 좋았다를 자유롭게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별 몇 개>에 대해 고민한 것은 이 책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감동을 받고 영향을 받았나를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별을 몇 개 줘야할지 고민했다는 것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바라보는 내 가치관에 혼란이 생겼다는 말과 통한다. 별 하나와 별 다섯을 오락가락한 나는 고민을 털고 감상을 적는다.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세상에 먼저 알려진 최춘선 할아버지의 독특한 삶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듣고 이 책을 구입했다. 과연 어떤 속 사정이 있길래 그 할아버지는 그런 삶을 살다가셨는지 알고 싶었다. 책은 텔레비젼 방송국 PD 김우현씨가 그간 카메라로 찍었던 할아버지와의 만난 이야기를 일기형식으로 털어 놓은 자그마한 에세이이다. 티비 시청을 거의 하지 않는 내게는 프로필에 적힌 그의 작품들이 생소하지만 <인간극장><현장르포 제3지대><성탄특집>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걸로 봐서는 휴먼스토리를 감동깊게 그려내는 감독인 것 같다. 나의 추측은 틀리지 않아서 그의 시선은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우연히 김우현PD의 카메라에 잡혀 작금의 한국교계에 깊은 감동을 전하는 최춘선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서울 지하철에서 맨말로 노방전도를 한 사람이다. "역사상의 가장 위대한 자비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의 초대" 와 같은 자신이 직접 만든 전도용 문구를 가슴에 달고 모자에 붙이고 입으로 외치며 다닌다. 우리는 맨발은 아니더라도 최춘선 할아버지같은 전도자는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대개 죽음의 경계에서 상식을 초월한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 은혜를 증거하기 위해 인파가 많은 도시로 나와 외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식의 노방전도자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컸었다. 왜냐하면 "복음"을 외치는 그들의 태도는 거의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듣는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다가가지 못하여 오히려 복음전파에 걸림돌이 되는 광신적인 행위라고 단정지었기 때문이다. 그 귀하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이맛살이나 찌푸리게 만들면서 까지 저렇게 꼭 전도를 해야하나? 하며 회의적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몇 년 전에 노방전도 모임에 강권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었다. "치, 저렇게 무식하게 전도하면 누가 믿을까? 도리어 많은 사람들이 교회 욕만 하잖아..'하면서 비판적이었던 내 생각을 회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10개월 정도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노방전도팀은 전도지 한 장 들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평소에 내가 제일 싫어하던 전도 방법이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우리 노방전도대원들은 각각 일주일에 꼭 한 명씩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을 만났다. 예수님의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었다. 난 그때 많이 회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치거나 성가신 일로 생각하는 그 노방전도의 방법도 꼭 필요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고 말이다. 길거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자살을 하려던 사람, 가정이 파탄나서 방황하던 사람, 가출 청소년. 그리고 평범한 셀러리맨, 인생을 다 바쳐 공부만 하고 싶다던 지독한 공부벌레 대학원생, 손자들과 시내 나들이 나왔던 할아버지......나는 그때, 내 눈엔 광신적이고 무식한 방법인 노방전도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구원사역을 이루어 가심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별 다섯 개도 모자랄 만큼 좋은 책이다. 문장이 비록 세련되게 다듬어 지지 못했고 감상으로 흐른 면이 없잖아 보이기도 하고, 베스트 셀러로 급상승할 만큼 짜임새나 문학적인, 혹은 여러가지 위대한 책으로써 갖추어야 할 틀은 제대로 못 갖춘 부실한 면이 많이 보이는 책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인들에게 던진 메시지를 생각하면 후하게 다섯 개는 줘도 무방할 책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주저했다. 최춘선할아버지를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의 신앙관과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볼 수록 아름다운 미스 코리아 유관순, 볼 수록 아름다운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Why two Korea"라는 할아버지의 외침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신학적 사상의 근간은 민족주의와 무교회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비록 행인들에겐 미치광이로 밖에 안 보이겠지만 그는 그 옛날에 일본 와세다 대학을 유학한 엘리트이다. 그가 일본에서 우치무라 간조와 가가와 도요히코의 영향을 받은 함석헌, 김교신과 같은 계열이라고 본인이 밝힌다. 나는 신학을 깊이 배운 적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그것의 헛점을 짚어낼 순 없으나, 확실히 아는 건 무교회주의의 위험성이다. 그리고 나도 구국기도를 빼먹지 않고 늘 기도하고 있지만 국가나 민족을 신앙의 자리에 앉히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어쩌면 이 책도 뉴에이지 음악처럼 소리나지 않게 서서히 무교회주의와 민족주의적 사관을 가진 신학을 정당화하여 기존 교회의 입지를 무너뜨리는 작업에 쓰이면 어쩌나 하는데 까지 생각을 연장시켜 보았다.
그러나 (갈등과 우여곡절 끝에?^^)나는 이 책에 별 다섯을 주며 결론을 맺는다. 그런 나의 자그만 기우를 덮고도 남는 강력한 메시지의 위력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천 이백만 크리스찬을 가진, 인구 중 25%라는 엄청난 성장을 거쳤다. 요즘은 그 성장세가 주춤하고 머물러 있다고 하는 통계가 있는데, 그 요인들이 무엇이건간에 확실한 건 예전만큼 우린 전도를 하지 않는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달라고 하셨는데도 우린 외면하며 내 한 몸 안일한 것에 안주해 있다. 이런 나에게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일평생을 바쳐 전도하며 숨을 거둔 최춘선 할아버지의 삶은 그의 신학적 노선이 어떠하든, 김우현님의 필체가 어떠하든 내겐 가장 값진 책이 되고도 남는다. 나는 머리로만 따지고 입만 똑똑해서 나불거리던 날라리 신자에 불과하다는 걸 책을 덮으며 깨달았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머리에 지식이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맨발로도 따라 갈만큼 몸으로,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다시금 깨닫게 된 책이다.
2005. 5. 20. 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