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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발한다 - 드레퓌스사건과 집단히스테리
니홀라스 할라스 지음, 황의방 옮김 / 한길사 / 2015년 8월
평점 :
<나는 고발한다>, 나홀라스 할라스
드레퓌스 사건은 재작년 수업을 들으면서 짤막하게 접한 적아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Captain Dreyfus’인데 한국어판의 제목은 졸라의 유명한 연설문의 제목을 따서 지은 듯 하다.드레퓌스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유명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J’Accuse)’ 논설은 알 것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듯 보인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사회를 절반으로 갈라놓은 유래없는 사건이다. 드레퓌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스파이로 낙인짝하고 정치적 파도에 휩쓸려버린다. 저자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극적인 서술방식과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읽다보면 가끔씩 실화라는 것을 잊게 된다.
사건은 누가 독일의 스파이로서 군사기밀을 뺴돌렸는가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내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유대인 드레퓌스’만이 남았다. 나는 아무리 들어도 유대인은 떠돌아다니며 동화되지 못한다 등과 같은 과거(혹은 현재도) 유럽 내에서의 뿌리깊은 편견의 출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사실 멋대로 지어낸 차별적 발언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못느낀다.) 그래서 나에겐 이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범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병적으로 느껴졌다.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뒤집어 쓸 사람 찾기, 후폭풍이 두려워 사회적 차별 이용하기,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기. 타국을 향한 견제와 두려움이 내부분열을 만드는 아이러니. 외부세력에 의해 망가지기와 내부의 추악함이 드러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무서운 것일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 맹목적인 사람들을 보면 힘이 빠진다. 편견과 고정관념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과장되었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편견은 그 집단과 가져본 시간에 반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단 몇 분의 대화로도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 말은 모순적이게도 편향되기 쉽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집단이 수십년, 수백년의 역사에 걸쳐 편견에 잠식되고 차별받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동료 인류에의 의무를 완강히 거부하는 이들을 보는 것은 더더욱 괴롭다. 그 굳은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누구나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걸 잊는듯 하다. 드레퓌스는 프랑스 땅에서 나고 자라 프랑스 군인으로 조국을 지키고자 했다. 그는 프랑스인이다. 하지만 반유대주의자들에겐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그 모든 것을 소거한다. 그들이 원하는 순수성과 전통성의 증거는 무엇을 더 충족하길 원하는지 모르겠다.
진실이 왜곡되고 거짓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질 때 절망스럽지만, 희망은 조용히 찾아온다. 조용히 다가와 한 사람, 두 사람 깨우기 시작하고 이내 서서히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어둡고 처절한 역사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이다. 사람이 망치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우리는 과오 속에 반성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존재니까. 에밀 졸라와 드레퓌스 지지자들. 그들은 한 개인을 구함으로서 수백만명의 한 집단을 나락에서 구했다. 우리는 미래에도 등장할 이들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같이 살아가는 일이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우리의 유일한 공통의무니까.
*이 서평은 한길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