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생활 적응을 위한 자원봉사(?)를 시작하고 서로 언어가 통해서 대화가 되는 것과 상대방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다른 문제인가 절감하던 중이어서 이 책에 더 흥미가 생겼다.
몽족인 나오 카오 리와 푸아 양 부부와 미국인 닐 언스트와 페기 필립이 환자의 가족과 의사 부부로 만나서 말도 통하지 않고 살아온 환경 문화 전통도 다른 상황에서 제대로 된 통역도 없이 생후 3개월의 뇌전증 환아 리아를 돌보는 과정은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몽족이라고 원래 중국에 살던 사람들인데 쫒겨서 베트남 라오스 등으로 흩어졌다가 라오스가 공산화 되면서 미국에 가서 난민이 되었다. 그 몽족의 아이가 이야기의 중심 축인데, 생후 3개월에 처음으로 뇌전증 발작을 일으켰으나 말도 안통하고 적절한 통역서비스도 없었던 상황이라. 왜냐하면 이게 1980년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리아의 부모는 이미 경험으로 리아의 병이 '코 다 페이(영혼에게 붙들리면 쓰러진다)' 즉 뇌전증이라는걸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병원의 첫 방문에서 기관지 폐렴이란 진단을 받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몽족의 문화와 미국 의료 문화의 간극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지만 이런 요약이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인지 모른다.
몽족은 (37쪽)온갖 것들에 대해 다 말하자면
......
(몽족이 말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것 같지 않지만 어떤 사건도 개별적으로 일어날 수 없으며 요점에만 주목하면 많은 것들을 잃을 수 있고 이야기가 꽤 지루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한 표현이다.
그래서 앤 패디먼은 리아와 그 가족이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마주쳤을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 위해 온갖 것들에 대해 다 말해야 했다.
그러니까 몽족의 역사에 대해서도 간결하게나마 다뤄야 하고 몽족의 민족적 특성, 베트남 전쟁, 양귀비 재배법, 리아의 진단과 처방 약의 변화, 이주 과정, 이민정책 등
앤 패디먼의 말처럼 기사 한꼭지로 끝나버릴 수 있었던 이야기가 500쪽 분량의 책으로 나오게 된건 어쩌면 그래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온갖 것들에 대해 다 말해야하니까.
우리에게 생소할 수 밖에 없는 베트남 전쟁(미국 정부가 숨겨왔으므로), 이민정책, 미국의 의료시스템, 몽족의 문화, 건조해지는 미국 의료진의 교육 과정(?), 다양한 인종차별 문제를 앤 패디먼은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중요한 지점은 놓치지 않고 말 잘하는 변사가 나와서 이야기 해주듯이 모두 다른 이야기 같은걸 잘도 엮고 있다. 그리고 들어보면 정말 모두가 다 필요한 설명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인 리아.
책을 보는 내내 리아의 병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리아의 현재 상태는 어떤지가 너무 궁금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리아의 상태에 반전이 있을리 없는데 읽는 내내 기대감을 갖게 되고 그래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나중에는 치 넹(샤먼, 무당)이 하는 희생제의가 성공해서 리아의 혼이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내 마음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정말 불가사의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걸 보며 지어낸 이야기에서는 받을 수 없는 뭉클한 감동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