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는 잘 읽힌다. 다만 공공화장실을 둘러싼 공간 배분의 정치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저자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규범적 주장을 앞세우면서, 여성이 사실상 성중립화장실을 이용하도록 강요받게 되는 현실적 위협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이를 단지 “여장한 시스젠더 남성 범죄자”에 대한 공포가 젠더 검열을 정당화하는 담론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식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서술로 보인다.만약 이런 주장을 하려 했다면, 기존의 성별 이분법에 기반해 설계된 공공화장실이 이후 어떤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는지까지 살펴보았어야 한다. 실제로는 남성 화장실은 그대로 둔 채 공간 부족과 비용 문제를 이유로 여성 화장실을 ‘올젠더 화장실’로 전환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실적 문제를 검토하지 않은 채 규범적 주장만 제시하는 것은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경험적 근거가 부족한 서술이 학계의 권위에 기대 특정 정치적 서사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한계는 분명하다. 3 장의 문제는 다른 챕터의 서술에 대한 신뢰까지 일부 깎아먹는다. 분명 앞장에서는 여성들만의 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면서, 화장실에 대해서는 "90년대에 내가 다닌 대학 기숙사는 남녀공용이었는데 그 때 남자들이 팬티차림으로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는 것에 금방 익숙해지고 별반 문제 없더라고. "하는게 저자가 비판했던 "여성에 삶에 무지.무관심하면서 도시 공간설계에 의사결정권한을 독점한 기득권 남성"의 태도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