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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 도피자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9월
평점 :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이 책은 조금 특별한 저승 판타지에 미스터리와 따뜻한 이야기가 섞인 소설이다. 무엇보다 죽은 영혼들이 잠시 몸을 숨길 수 있도록 작은 처마, ‘소도’를 만들어준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저승사자를 피해 숨어든 망자들이 그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나거나 미처 하지 못한 인사를 남길 수 있다는 발상이 꽤 다정하다.
주인공 현수리는 그런 영혼들을 돕는 일을 하다가 귀한 영혼의 실종 사건에 휘말리고, 수상한 인테리어 업체 ‘지족 스페이스’와 저승사자 신산까지 만나게 된다. 특히 야근 중 들려오는 “8층에 가지 마”라는 말이나, 평범한 쇼핑몰 사무동에 귀신을 붙잡아두는 비밀 공간이 있다는 설정이 계속해서 은근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해서 단군히 사건만 쫓아가는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할 순 없다. 신산과 함께 영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리는 자신이 왜 차사를 싫어했는지, 왜 망자들을 숨겨주고 싶어했는지를 조금씩 마주하게 된다.
‘도망’이라는 말을 역시 이 책의 주제어로 삼고 싶다. 죽은 자들은 저승사자를 피해 도망치고, 수리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도망치듯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망자의 도피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도 때로는 잠시 숨을 곳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작은 처마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걸어갈 힘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미스터리의 강도가 아주 세거나 반전을 쉴 새 없이 터뜨리는 작품은 아니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사연이 하나씩 겹쳐지면서 뒤로 갈수록 점점더 몰입하게 되는 스토리였다. 그래서 《처마 밑 도피자들》은 무섭다기보다 다정하고, 기묘하면서도 은근히 마음을 건드리는 소설이라고 하고 싶다. 나에게도 잠시 숨어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처마 하나가 있다면 참 좋겠다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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