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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 돌봄을 살아낸 우리에게 쉼이 되는 그림들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6년 7월
평점 :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그림은 사람을 안아주는 언어"
저자는 몸의 병과 돌봄의 시간을 함께 견디며 살아왔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질환을 알게 되었고, 엄마이자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균형이 무너질 것 같은 날이면 미술관을 찾았다고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그림 앞에 잠시 머무는 시간은 저자에게 스스로를 다시 붙잡는 작은 쉼이 되어주었다. 이 책은 그렇게 한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붙잡았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기록이라 더욱 진심이 느껴졌다.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를 읽으며 나를 계속 붙잡았던건 그림 앞에서 자신의 삶을 조용히 반추하는 저자의 시선이다. 그라서 이 책은 미술 작품을 해설하는 책이라기보다, 무너질 듯한 날마다 그림을 붙잡고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운 기록에 가깝다.
특히 "예술이 주는 위안은 거창한 의미나 비평적 인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뷔야르의 실내 풍경을 보며 "엄마는 늘 우리 집의 배경이었다"는 고백으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당연해서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존재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조용하고, 또 얼마나 깊은 사랑이었을까.
함메르쇠이의 고요한 방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방"은 결국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침묵이라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도 참 좋다.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보호자도 아닌 오롯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 그 작은 여백조차 얼마나 귀한 것인지, 바쁘게 살아갈수록 더 절실해진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린다.
아이를 안고 있는 셰르브베크의 그림을 보며 부모와 아이는 서로를 살리는 '생명줄'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느낀다. 돌봄은 희생만이 아니라 서로에게 생명을 건네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또 켄트의 설원 속 가족 그림에서는 "행복에도 긴 그림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행복이란 늘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고단함을 품고도 함께 웃는 순간이라는 진리를 전해듣는다.
욕실을 "견디기 위해 피신하는 공간"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마음이 찡했다. 물을 틀고 몸을 씻는 행위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의식이 된다. 누구에게나 그런 작은 피난처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미술을 알아야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림 한 점 앞에서 자신의 기억과 상처, 사랑과 후회를 천천히 꺼내놓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삶도 그 그림 위에 겹쳐보인다.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춰 서듯,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때로는 거창한 위로가 필요하지 않다. 말없이 걸린 그림 한 점과 그 앞에서 숨을 고르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멀리서 보면 누구나 비슷해 보이는 인생도, 가까이에서 조용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특별해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그런 시선이, 말없이 머물러주는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닐까.
📌모네는 건초 더미처럼 누가 관심이나 줄까 싶은 평범하고 사사로운 대상에서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는 작업을 했다. (...)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런 게 아닐까. 일상의 작은 틈과 균열 사이에서 생의 의미를 발견해 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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