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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잠 - 덕자전성시대 덕자의 장편소설
박보미(덕자전성시대) 지음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7월
평점 :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그루잠』은 낯선 세계다. 읽는 내내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져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환상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다 종내는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하나의 퍼즐처럼 맞춰지고, 이어서 깊은 울림이 밀려온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윤설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끝내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반복되는 배신과 불합리 속에서도 선의를 놓지 않으려는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안쓰럽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버텨내는 윤설의 태도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상처를 견디며 살아온 방식처럼 느껴졌다.
첫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믿었던 사람들과의 인연, 강아지 우주와의 만남, 그리고 삶을 함께 견디는 친구까지. 사건 자체는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윤설에게는 하나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으로 다가온다. 사람을 믿고 싶지만 끝내 상처를 입고, 가까워지고 싶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인간관계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의 고백이 전해졌다.
기억과 진실이 뒤섞이는 전개, 현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구성도 인상 깊다. 영혼의 세계라는 설정을 통해 현실에서는 끝내 알 수 없었던 관계의 진실이 드러나고, 독자는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정말 진실일까'라는 질문을 계속 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신과 기록은 몽환적으로 흘러가던 이야기들을 다시 현실로 끌어당기며, 윤설이 왜 그런 방식으로 기억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용히 짐작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작가 덕자의 실제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여성으로 공업고등학교 전기과를 다닌 이력이나 직장에서 겪은 경험 등이 윤설의 삶과 비슷하게 맞닿아 있어, 어떻게 보면 소설이라기보다 자전적인 기록을 한 겹 감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윤설의 무덤덤한 태도와 절제된 감정 표현 하나하나가 허구라기보다 실제 삶에서 비롯된 감정처럼 읽힌다.
문장들도 참 깊다. "다쳐도 웃게 되었다.", "사라졌다는 사실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같은 문장들은 마치 새벽에 꾼 꿈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감정은 오래 남긴다. 챕터 사이사이에 삽입된 음악 기호들 역시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쉼표처럼 다가와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준다.
『그루잠』은 이렇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독특한 구성과 상처를 안고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인상적인 소설이다.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에 머무는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그루잠 #박보미 #오픈도어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