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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자 행성 - 린 마굴리스가 들려주는 공생 진화의 비밀 ㅣ 사이언스 마스터스 15
린 마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린은 칼 세이건의 첫번 째 부인으로 부부가 '물리학과 생물학을 다 해먹었다'는 농담을 들은걸로 처음 알게 된 분이다. 생물교과서에 세포공생설 배운 기억이 있는데, 린의 책을 이번에 읽게 되었다.
문체는 부드럽고 포용적이고 발랄한 가운데 명료하고 섬세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초반에 조금 해주었는데, 대학 신입생이 칼을 만나 임신을 한 채 학교에 다닌 이야기는 좀 코믹했다. 자유롭고 힘 있는 여성성을 느낄 수 있어서 나를 조금 흥기시켰던것 같다.
책은 정독하지 못하고 드문드문 성글게 읽었지만 마디마디 새로운 그림을 제시하고 있어서 다시 정독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래는 읽다가 밑줄 그은 내용인데 린이 전달하려는 큰 그림의 핵심 조각이라고 판단된 부분은 아니고 그냥 내가 읽고 내 사고를 좀 자극한 부분들이다.
p117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화학 활동인 대사는 생명의 본질적인 특징 중 하나다. 바이러스는 그것이 없다...바이러스는 식물, 동물, 곰팡이, 원생생물로 침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살아 있는 세포의 막 바깥에서는 불활성이다....바이러스는 다른 생물의 대사에 의존하므로, 최초의 바이러스는 세균에서 진화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바이러스가 세균이나 인간 세포와 마찬가지로 '병원체'도 '적'도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의 바이러스들은 세균과 인간 세포, 다른 세포들 사이에 유전자를 퍼뜨린다. 세균공생자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도 진화적 변이의 원천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생물집단은 자연선택을 겪는다.
세포에 기반을 둔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도 한 서식지에서 지나치게 증식하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바이러스의 자원이든 다른 무엇의 자원이든 간에, 과잉 성장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뇌의 이마엽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바이러스다.
p134
수정란 하나가 열 달 뒤에 비록 작고 힘없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인간이 될 수 있다면, 세균 하나가 30억 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현재의 온갖 생명체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도 그리 상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장 작고 가장 단순한 세균도 우리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 최근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그 세균들도 단백질, 지방, 비타민, 핵산, 당, 탄수화물 같은 우리와 똑같은 구성요소들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대사활동을 한다. 따라서 가장 단순한 세균조차도 사실은 극도로 복잡하다.
p139
청결, 수술 도구의 살균, 항생제는 모두 미생물 공격자들과 맞서 싸우기 위한 전쟁무기다.
그러니 미생물이 우리의 동료이자 조상이라는 더 균형 잡힌 견해는 거의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질병 '매개체', 즉 '병균'이 모든 생명을 낳았다는 확정된 사실을 무시한다. 우리 조상들은 바로 그 병균들, 즉 세균이었다.
p142
모로위츠는 생물학에 공간, 시간, 인과율 외에 '기억'을 추가한다. 그는 생물학이 물리학과 역사학 사이에 놓인 다리라고 주장한다.
....화학계에는 '자기'가 없다. 즉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만들 수 없다. 반면에 생명은 언제나 일련의 자기 자신을, 즉 생물이나 세포를 인식해 왔다. 생명은 계속 존재하려면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지만, 과거의 생명과 단절되지 않고 연결된 상태에서 그렇게 한다. 생명은 기원했을 때부터 불연속성 없이 과거와 화학적으로 연결되어 왔다.
생명은 본질적으로 기억 저장시스템이다...막 구조는 생명의 필수 조건이다. 오늘날 막으로 둘러싸이고 정체성과 통합성을 지닌 존재는 세포다. 생명은 시작될 때부터 세포, 즉 유전 분자들과 그것들을 환경과 격리시키는 기름막의 상호 작용체였다.
p175
바로크 양식의 건물처럼 기괴한 '우리'는 돌연변이를 하는 공생 세균의 융합을 통해 약 20년마다 재생산을 한다. 우리의 몸은 체세포 분열을 통해 약 20년마다 재생산을 한다. 우리의 몸은 체세포 분열을 통해 스스로를 복제하는 원생생물 생식 세포로부터 만들어진다. 공생 상호 작용은 이 행성에 바글거리는 생명의 원료다. 우리의 정수인 이 공생 발생적 복합체는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최근에 이루어진 혁신 사례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출현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과 다르고 훨씬 더 우월하다는 강력한 느낌은 크나큰 망상에 불과하다.
나는 이 망상이 '종 인지'의 필요성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는 번식을 하여 더 많은 자손을 낳아야 한다는 필요성과 열정을 느낀다. 진화 경기장에서 계속 활동하려면 짝이 될 만한 자기 종의 개체들을 알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 성적인 자동 초점 메커니즘은 우리가 여러 종으로 구성된 공생 발생적 존재라는 더 큰 진실을 흐릿하게 만든다. 다중 조성(multicomposition)이 우리의 본질이다.
p183
공생과 마찬가지로 성도 융합의 문제다. 하지만 그것은 융합체로부터 주기적으로 탈출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성은 주기성을 띤 공생의 아주 특수한 사례로 볼 수 있다.
p186
인간이 먼 우주 공간을 항해하려면 폐기물을 식량으로 재순환할 인간 이외의 다양한 생물들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생태계 서비스'가 없으면 인간은 어머니 지구와 오래 떨어져 있을 수 없다....
나는 지구가 가이아 여신의 화신이라는 개념보다 '생태계들'의 망이라는 개념을 더 선호한다....생태계를 '외부에서 유입되는 에너지와 물질을 이용하여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사는 생물종들의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p193
순환계는 땅에서 물을 퍼 올려서 줄기와 잎으로 보내고, 광합성 산물들(양분)은 밑으로 보낸다....식물은 습한 환경을 재창조하고 그것을 몸속에 봉인함으로써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나무는 물을 가두고, 그것을 육지로 옮기고, 증발산을 통해 통제하는 일을 아주 잘 해 낸다.
p196
우리가 아무리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해도, 생명은 훨씬 더 폭넓은 계를 이룬다. 우리 피부 바깥(그리고 안쪽)에 있는 수백만 종들은 물질과 에너지 측면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서로 의존하고 있다. 지구의 이 이질적인 존재들은 우리의 친척이자, 우리의 조상이자, 우리의 일부다. 그들은 우리의 물질을 순환시키고, 우리에게 물과 양분을 준다. '남'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살아 있는 물을 통해 공생하고, 상호작용하고, 상호 의존하던 과거와 연결된다.
p216
러블록은 이런 발견들을 일반화하여 행성의 대기 체계 전체가 '준안정 상태', 즉 반응성을 지닌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는 상태에 있다고 주장했다. 화학 반응성이 유지되는 것은 생물들의 연합 활동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몸 뿐만 아니라 활성이 없는 배경이라고 간주하는 대기를 포함한 행성 표면 전체가 화학 평형 상태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따라서 행성 표면 전체가 살아 있다고 보는 편이 가장 낫다.
순환계가 땅에서 물을 퍼 올려서 줄기와 잎으로 보내고 광합성 산물들을 밑으로 보내는 그림은 있는 그대로 수승화강의 사실로 보였다. 린이 그려준 생물학적 내용들은 기존의 내용들보다 보다 상수적으로 부합된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의 작은 세균부터 우리의 몸, 그리고 지구 전체가 종횡으로 엮여 있는 하나의 장으로 설명하는 스케일이 말이다. 마지막 발췌문에서 '활성이 없는 배경이라고 간주하는 대기를 포함한 행성 표면 전체가 살아 있다'는건 경락공간과 비슷하지 않은가? 공간이 살아 있다는 걸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된 듯 하다.
한편으로 생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미시부터 거시세계까지를 오가면서 인간의 '나'라는 의식이라는게 귀엽게 느껴질 만큼 작고 여리다는 생각이 들고 저변의 '식'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괜한 긴장감이 풀리는 듯한 묘한 기분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