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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전경린이다. 흔히 귀기의 작가라고 불리는 그녀이다. <염소를 모는 여자>를 시작으로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에서 독자를 붕 뜨게 만들더니 <엄마의 집>에서 위트 있는 임팩트를 터뜨려준다. <풀밭 위의 식사>는 오랜만에 출간 된 그녀의 소설이다. 전경린 답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서사, 하지만 무언가 불온하고 완전하지 않다. 심지어 강진을 만난 것처럼 격렬하게 떨리기도 한다. 여전히 전경린이 말하는 사랑은 불안하고 윤리적인 것을 뛰어 넘는다. 제도적인 사랑을 거부하는 전경린은 여전히 지독했으며, 독자를 뒤흔드는 마력역시 지독하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서 절정의 불륜은 선보였던 전경린,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에서는 불완전한 청춘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낸 그녀는 <엄마의 집>에서 가족의 사랑을 말한 후, 근친상간이라는 도발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여기 나오는 누경의 삶은 전경린의 옛날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불안하다.
여기서 나오는 서경주와 누경은 근친상간을 하는 인물이며, 절절한 로맨스를 그려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때로는 격정적인 그들의 심정에 동화되어 가슴이 짠해지기도 한다. 옛날 보다는 많이 줄어든 편이지만 전경린의 문장 역시 여기에 한 몫을 하는 것이 맞다. 흔히들 근친상간하면 데카당스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선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책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일기형식의 글이 사랑스러울 정도.
“그것도 좋아. 너를 참고 있는 마음이 맑고 낮아서 소중해.” (137p)
“마음속의 빈 상자들이 젖어서 모두 무너졌어요.” (138p)
어딘가 탈낭만화적인 분위기를 그리는 것 같기도 한 누경과 서경주. 사실 둘의 관계를 다른 작가, 백영옥 작가나 김이설 작가가 그렸으면 어땠을까?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풀밭 위의 식사는 오로지 전경린만이 쓸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완전한 전경린표 로맨스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거친 근육 같은 산맥들, 긴긴 계곡, 검은 돌이 쌓여 있는 폐광산들과 버려진 탄광촌, 가난과 외로움과 부랑, 추위와 고요 속에 폐허의 외딴집들이 띄엄띄엄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141p)
이 문장을 보고서 워더링 하이츠*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을까? 영문학 3대 비극인 폭풍의 언덕에서 보았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격정적인 사랑. 전경린과는 다르지만 풍경은 사뭇 비슷하다. 둘 다 절절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똑같다.
유리공예라는 직업적 이미지, 유리가 가지는 성질은 누경과 비슷하다. 스스로를 액체화 하면서 고체임을 부정한다. 산산히 깨져 가시를 만드는 유리의 성질과는 달리 누경은 스스로 고체 이전의 상태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난, 양파를 쓰지 못했어요. 양파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데 말이에요. 난 내 스스로 나쁜 인생을 만들어요.
전경린의 책을 전부 소장하고 있지만 유독, 이 책의 절제된 문장들은 노트에 옮겨 적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 Wuthering Heights, Emily Bronte. 영문학 3대 비극인 폭풍의 언덕의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