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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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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계는 무수한 공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공란을 채우는 것은 오롯이 스스로의 몫이다. 김금희 작가는 특유의 굵은 뼈대로 이루어진 문장과 언어로 이 책을 써내려갔고, 그 속엔 무수한 질문과 해답 없는 의문들이 가득하다. 상수가 생각해낸 괄호() 속에 갇혀 있다보면 영영 해답을 알 수 없는 그런 물음표들이다.

이번 장편소설이 첫 장편이어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태껏 작가가 써왔던 주제들이 한데 모였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주변인들의 소소하면서도 약간 마이너한 분위기. 그렇기에 더욱 정감가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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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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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전경린이다. 흔히 귀기의 작가라고 불리는 그녀이다. <염소를 모는 여자>를 시작으로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에서 독자를 붕 뜨게 만들더니 <엄마의 집>에서 위트 있는 임팩트를 터뜨려준다. <풀밭 위의 식사>는 오랜만에 출간 된 그녀의 소설이다. 전경린 답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서사, 하지만 무언가 불온하고 완전하지 않다. 심지어 강진을 만난 것처럼 격렬하게 떨리기도 한다. 여전히 전경린이 말하는 사랑은 불안하고 윤리적인 것을 뛰어 넘는다. 제도적인 사랑을 거부하는 전경린은 여전히 지독했으며, 독자를 뒤흔드는 마력역시 지독하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서 절정의 불륜은 선보였던 전경린,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에서는 불완전한 청춘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낸 그녀는 <엄마의 집>에서 가족의 사랑을 말한 후, 근친상간이라는 도발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여기 나오는 누경의 삶은 전경린의 옛날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불안하다.


여기서 나오는 서경주와 누경은 근친상간을 하는 인물이며, 절절한 로맨스를 그려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때로는 격정적인 그들의 심정에 동화되어 가슴이 짠해지기도 한다. 옛날 보다는 많이 줄어든 편이지만 전경린의 문장 역시 여기에 한 몫을 하는 것이 맞다. 흔히들 근친상간하면 데카당스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선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책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일기형식의 글이 사랑스러울 정도.


“그것도 좋아. 너를 참고 있는 마음이 맑고 낮아서 소중해.” (137p)

“마음속의 빈 상자들이 젖어서 모두 무너졌어요.” (138p)


어딘가 탈낭만화적인 분위기를 그리는 것 같기도 한 누경과 서경주. 사실 둘의 관계를 다른 작가, 백영옥 작가나 김이설 작가가 그렸으면 어땠을까?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풀밭 위의 식사는 오로지 전경린만이 쓸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완전한 전경린표 로맨스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거친 근육 같은 산맥들, 긴긴 계곡, 검은 돌이 쌓여 있는 폐광산들과 버려진 탄광촌, 가난과 외로움과 부랑, 추위와 고요 속에 폐허의 외딴집들이 띄엄띄엄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141p)


이 문장을 보고서 워더링 하이츠*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을까? 영문학 3대 비극인 폭풍의 언덕에서 보았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격정적인 사랑. 전경린과는 다르지만 풍경은 사뭇 비슷하다. 둘 다 절절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똑같다.


유리공예라는 직업적 이미지, 유리가 가지는 성질은 누경과 비슷하다. 스스로를 액체화 하면서 고체임을 부정한다. 산산히 깨져 가시를 만드는 유리의 성질과는 달리 누경은 스스로 고체 이전의 상태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난, 양파를 쓰지 못했어요. 양파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데 말이에요. 난 내 스스로 나쁜 인생을 만들어요.


전경린의 책을 전부 소장하고 있지만 유독, 이 책의 절제된 문장들은 노트에 옮겨 적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 Wuthering Heights, Emily Bronte. 영문학 3대 비극인 폭풍의 언덕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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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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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굉장히 위트있는 문장을 써내려가는 작가들 중 한명이다.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는 그녀에게 최연소 한국일보 문학상을 선사했다. 그것도 책으로 묶이기 전에. 어떻게 그녀가 심사위원들을 사로 잡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달려라 아비를 비롯, 나는 편의점에 간다 까지 읽으면 곧장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편의점에 간다>가 제일 좋았다. 편의점이라는 다분히 일상화되고 우리 삶의 한 부분에 자리잡은 공간을 일상에 고착화 시키면서, 내용은 대단히 재미있어지고 거기에 김애란표 문장이 더해지니 독자는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중에는 조금 전 비디오방에서 쎅스를 한 뒤 같이 컵라면을 나눠먹는 어린 연인도 있을 테고, 근처 변원에서 아이를 지운 뒤 목이 말라 우유를 사러 온 여자, 아버지께 꾸중듣고 담배를 사러 온 백수 총각, 얼굴을 공개한 적 없는 예술가나 실직자, 간첩, 심지어는 걸인으로 위장한 예수조차 있을지 모른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33p)


나는 편의점에 간다 초반부에 나오는 문장이다. 편의점이라는 일상화된 공간을 단숨에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공간으로 바꿔버리는 비범한 문장, 사실 달려라 아비를 읽을 땐 그리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다. 두 번째 단편으로 수록된 나는 편의점에 간다, 를 읽는 순간 그 매력이라는 것을 비로소 폭발하듯 느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매력은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노크하지 않는 집>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이들의 어딘가 결여되어 보이는 모습은 현실을 과도로 자른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지고, 문장에서 느껴지는 현실이 곧 진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얼굴을 보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사는 노트하지 않는 집의 여자들처럼,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각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김애란이 말해오는 것은 20대의 삶이다. 이데올로기적 풍경과 IMF시절의 각박한 삶이 아닌, 이젠 좀 풍요로워졌다 싶을 21세기 20대들의 삶.


어쩐지, 김애란 소설의 주인공들은 삶을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뜻대로 해석하고 자신에게 맞추려하는 이기주의를 지니고 있다. 평소 뉴스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서로와의 갈등, 불화 등을 김애란은 자기 방식대로 풀이하며 웃음을 준다. 이를 보면 약간 김미월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엄연히 다르다. 김미월 소설의 주인공은 착하다는 느낌이 확! 하고 들지만 김애란 소설의 주인공들은 단칸방에 살고,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뭔가 문장으로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긴다. 근데 그게 현 20대의 모습이라니!


사실 달려라 아비 이 책의 상당수를 스크랩하고 싶지만 자제하겠다. 어쨌든 김애란은 가능성이 보이는(사실 단편에서 보면 그렇다.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실망에 가까워서) 작가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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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 민음 경장편 1
김이설 지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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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이설의 글들은 전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가령, <나쁜 피>와 <환영>의 경우, 둘은 비슷비슷해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구도를 띄우고 있다. 오히려 김이설 특유의 문장과 그 문장이 주는 눅진한 느낌이 우리는 다르다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쁜 피의 경우, 김이설이 첫 책이자 이 첫 책으로 동인문학상 최종후보까지 오른 무서운 책이다. 그 기세도 무섭지만 내용도 무섭다.


가난과 폭력, 애정결핍으로 똘똘 뭉친 화숙은 할머니와 천변 어귀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화숙이 수연의 딸 혜주를 맡게 되면서 전체적인 이야기가 풀어진다. 그런 혜주에게 지극한 모성애를 내뿜어대는 진숙, 이렇듯 화숙의 주변에는 정상처럼 보이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자신의 엄마는 동네사람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화숙은 그 모습을 종종 보아왔다. 그런 화숙이 자신을 다스리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분을 푸는 것. 주로 외삼촌의 딸인, 사촌 수연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엄마가 외삼촌에게 맞으면 맞을수록 화숙은 더 수연을 때렸다. 이렇듯, 화숙은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에서 성장했고, 자신의 엄마처럼 정상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삶에서 자라난 인물이다.


“죽었어? 나는 할머니의 옆구리를 툭, 찼다.” (9p)


사실 나는 이 첫 문장을 읽는 것으로도 가슴 한 부분이 아려왔다. 그리고 궁금증을 유발했다. 대체 어떤 현실을 목도했길래 이런 장면이 나오는 걸까, 하고. 이렇듯, 김이설의 나쁜 피는 처음부터 불편한 장면을 보여줌으로서 독자의 심기를 건드린다. 이는 김이설의 등단작인 <열 세 살>에서부터 이어진 것이었고, 가끔 생각해보면 열 세 살의 인물을 그대로 성장시킨 채 <나쁜 피>에 삽입시킨 게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들 사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 보고 싶어.” (125p)


수연이 말한다. 다들 사는 것처럼이라고. 김이설의 소설은 살아가기 힘든 이들로 가득하다. 노숙자인 <열 세 살>의 아이들부터 그녀의 또다른 장편인 <환영>에서 몸을 팔며 살아가는 서윤영이 그랬다. 여성을 내세워 막막한 현실을 질주하는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작 김이설의 글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잠시 숨을 고를 틈을 주지도 않는다. 현실에 대한 망설임이나 환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상처를 내며 달린다.


“수연이 죽은 뒤로 나는 매일 아침 수연의 아파트에 찾아갔다.”


수연은 화숙에게 있어서 하나의 버팀목이었다. 욕지거리를 날리고 때리고 그렇게 난리브루스를 만들었어도, 결국은 하나의 버팀목이었다. 붕괴될 것 같았던 가족은 어느새 다시 구도를 맞추고 슬픈 현실을 달리려고 한다. 이렇듯, 김이설의 글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속에서 꿈틀거리는 살아가는 모습에 겨워 다시 김이설의 글을 찾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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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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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의 소설은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하는 해학으로 가득 차 있다. 대산대학문학상인 <피어싱>으로 등단한 이 작가는 <무중력 증후군>으로 한겨례 문학상을 받았고, 몇 년이 지난 후 <1인용 식탁>이라는 단편집을 낸, 아직 그리 익숙하지는 않은 작가이다. 처음 이 작가를 만난 건 <무중력 증후군>이었다. 도서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빼 읽은 책인데 그 자리에 서서 30페이지를 웃으며 읽는 나를 발견했고, 나는 주저없이 그 책을 대출해서 읽었다. 내 전작주의의 의지를 활활 태우는 작가를 발견한 것은 그 당시 참 오랜만이었다.(편혜영 이후)


표제작이자 제일 첫 단편인 <1인용 식탁>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씁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윤고은의 소설은 전부 비슷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현실에서 받은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살면서 그것을 견디려고 노력하려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1인용 식탁에서의 혼자 밥 먹는 것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라던가, <아이슬란드>에서 아이슬란드로 가고 싶어 하는 주인공이라던가, 꿈에 집착하는 사람(박현몽 꿈 철학관) 등, 이상하게도 주인공들은 은근히 탈낭만화적이다. 단순히 너무 이야기를 웃기게 써서 드러나지 않을 뿐.


정말이지 윤고은의 작품들은 상상력 하나는 기발하다. 특히 <달콤한 휴가>라는 단편에서 빈대를 처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빌라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 아닐 수 없으며, 박현몽 꿈 철학관에서의 꿈을 판다는 설정 역시 기발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작가의 역량일 터, 1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인 김애란과는 다르게 묘한 느낌이 있다. 애초에 김애란도 괜찮지만 윤고은이 김애란 만큼의 인지도가 없다는 것이 조금 슬프다.(김애란은 특유의 문체가 사람을 빠지게 만든다)


“산악인에게 에베레스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고깃집이 있다”(1인용 식탁 30p)


현실에 대한 모습이 녹아나 있는 것은 현 젊은 작가들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다. 윤고은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발휘하는 편인데, 이는 <로드킬>에서 잘 나타나 있다. 기계문명, 무인텔을 기반으로 하여 자본주의적인 구라를 능청스럽게 나열하고 있다. <인베이더 그래픽>에서의 소설가는 약간 루저문학의 연장선처럼 보였다. 혹은 스스로의 합리화가 잘 배어난 소설인 것도 같다. 소설에서의 주인공들이 현실에서 소외된 모습을 잘 포착한 것이다.


“그들은 꿈을 직접 꾸기보다는 간편하게 사기를 원했다.” (박현몽 꿈 철학관 142p)


오히려 상상을 더 발휘하면서, 이런 이상향적인 모습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모습도 얼핏 보인다. 어찌보면 참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다. 어깨너머로 현실을 방관하며 꿈을 꾸는, 혹은 스스로의 나르시즘에 빠진 것들에 물을 끼얹는(혹은 문장을 끼얹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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