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 - 호시노 미치오의 마지막 여정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임정은 옮김 / 다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알래스카 대자연의 영혼을 품은 호시노 미치오

야영하다 곰에게 물려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야생 사진작가

그가 남동 알래스카의 원시림을 찾아 걷는다.

그것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들어가는 산책이다.

나의 산책은 어떤가?

 

"몇 년 전 이 근처에 왔을 때 브라더스 섬의 원시림을 산책한 적이 있다. 곧게 선 나무와 쓰러진 나무, 땅바닥과 바위를 온통 이끼가 덮어 숲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 같은 불가사의한 세계로 빚어내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숲속을 헤맸다. 고요 속에서 가만히 정지한 숲의 기운을 느끼며 이전엔 몰랐던 시간의 잣대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까마득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숲은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숲의 움직임을 그때의 나는 애타게 감지하고 싶었던 것일 테다."

 

"한때 이 땅을 가득 메웠던 빙하가 서서히 후퇴한 뒤, 고개를 내민 새 흙에 어느 새 나무가 자라고 깊숙한 골짜기에는 밀려드는 바닷물과 함께 고래가 돌아왔다. 지구의 역사는 같은 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문득 신비로운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숲도, 빙하도, 고래도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자연을 간직한 알래스카 타센티니 강, 인디언 말로 '큰까마귀의 강'을 따라 내려가는 호시노 미치오

그는 글레이셔 베어라 불리는 신비의 파란 곰을 만나고 싶다.

그는 그 곰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 곰의 숨결을 느끼고 이해한다.

나의 여행은 어떤가?


"강변의 모래밭 위에는 늑대 발자국이 종종 찍혔다. 흑곰이 야영장 근처를 몇 번 지나갔다. 하지만 글레이셔 베어는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글레이셔 베어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글레이셔 베어의 숨결을 피부로 항상 느꼈기 때문이다. 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설령 내가 미끼를 놓아 글레이셔 베어를 유인한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글레이셔 베어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설령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나무에서, 바위에서, 바람 속에서 나는 글레이셔 베어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무수한 진실이 우리 앞에 벌거벗겨져 끌려 나오고 온갖 신비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금, 보이지 않는 것에는 그래서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박물관에 깨끗하게 보존된 토템 기둥이 아니라 숲속에서 비와 바람에 닳아 썩어 가는 토템 기둥이 더욱 신성한 힘을 지니는 것처럼 말이다.

 

보이는 것에 탐욕하는 서양 문명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받드는 인디언 문명의 충돌

호시노 미치노는 퀸살럿 섬의 토템 기둥을 둘러싼 갈등에서 그것을 본다. 

나는 어느 편인가?


"20세기가 되고 강국의 박물관이 전 세계의 역사적 미술품 수집에 앞다퉈 나서는 시대의 막이 올랐다. 퀸샬럿 섬도 그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대다수의 토템 기둥이 강국에 의해 저들의 나라로 빠져나갔다. 살아남은 이이더족의 자손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성한 장소를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지도록 방치하겠다고 선언했다. 인류사에 있어 중대한 가치를 지니는 토템 기둥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외부의 압력마저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그 땅과 깊은 연관을 맺은 영적인 것을 무의미한 장소에 가져가서까지 보존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젠가 토템 기둥이 닳아빠지고 울창한 숲이 모든 것을 뒤덮어 소멸시켜도 상관없다. 그곳은 언제까지 신성한 장소로 남아 있을 것이다. 왜 이해하지 못하는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회와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둘 줄 아는 사회의 차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후자의 사상에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매력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생명의 기척이 한층 더 근원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다. 더 깊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미묘하다. 더 신비하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근원적이다. 더 영적이다.

 

호시노 미치오의 아름다운 영혼이 담긴 사진과 글

1996년 8월 8일 곰에게 운명적인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의 기록을 담은 미완의 여행기

그의 <여행하는 나무>만큼이나 감동적인 책

 

호시노 미치오는 말한다.

"갖가지 동물, 한 그루 나무, 심지어 바람마저도 영혼을 가지고 존재하며 인간이 그들을 바라보듯 인간을 응시한다."

 

나는 그것을 아나?

동물과 나무와 바람의 응시를 느끼나?

- 약초를 따러 가는 날 아침에는 물만 마셔. 자기 몸을 식물과 같은 차원으로 만드는 거야. 마음속으로 식물에게 말을 거는 것도 중요해. 그렇게 몸과 마음이 식물과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숲속에 들어가면, 내가 약초를 찾는 게 아니라 약초가 자기가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어주지. 정신을 차리면 약초 앞에 서 있는 거야. 식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갖고 있으니까. (클링깃족 인디언)

- 밤이 되었다. 숲 입구에서 살짝 들어간 시냇가에 텐트를 쳤다. 오랜만에 활짝 갠 밤이었다. 하늘을 우러르자 까만 나뭇가지 그림자 사이로 쏟아질 듯한 별이 보였다. 수많은 별들이 뿜어내는 빛을 마주할 때마다 시간이 지난 의미를 새삼 되묻게 된다. 수만 년 전의 별빛이 지금 내 눈동자를 비추고 있다. 몇 광년 떨어졌는지에 따라 저마다 다른 시간을 건너온 별빛들이다. 유장한 우주의 시간을 한눈에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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