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너머의 역사담론 1
오항녕 지음 / 너머북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국사든 세계사든 학창시절에 암기위주의 수업으로 인해 완전히 흥미를 읽었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책을 아무리 좋아하는 나로서도 역사서...를 완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이벤트에 신청했고, 이렇게 서평까지 남기게 된 건 학창시절 완전히 포기한 듯 지나쳤던 역사..
그러니까 국사에 작은 호기심이 같은 게 발동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tv를 통해 사극을 간간히 접하면서부터 조금씩 관심이 생긴 거 같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보니,
지나간 과거의 시간을 토대로 현재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지나간 옛시간들을 간간히 떠 올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같다.
 
백만은 넘었다는 영화 <광해>.. 아직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번쯤 본다면 광해군을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도 알 수 있을 꺼 같다. 정말 역사란.... 훗날 누구의 잣대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참 많이 다르게 조명되는 듯 하다.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안목도 되지 않거니와 국사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지식도 바닥이기에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건 인간 광해군...에 대한 해석보다는... 그 주변.. 정세와 그 주변인들이 궁금했다.
깊이 있게 알고 싶었던 것보다 아마도 광해군 전후 시대의 흐름이 궁금했다.
그러면서 국사에 대해 조금씩 발을 담글 수 있는 계기였기를 바랐다.
하지만.. 책을.. 사실 힘들게 읽어 내려갔고... 글쎄~~ 그냥.. 가슴에 뭔가 와 닿는... 그런 느낌은 없었던 거 같다, 아쉽게도 말이다.
그래도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은 이유는 저자가 나름의 주관과 신념으로 이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광해군은 너무나도 절박하고 중요했던 시기를 허망하게 보내버렸고 그 잃어버린 15년(재위기간)은 실기(失機)의 업보까지 남겨주었다.”며 “나라가 망하는 과정을 알면 나라를 일으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듯이 이 나라가 어떤 세상이 되길 원하는지 광해군과 그의 시대에서 배우길 권한다.”처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잊지 말고, 이 나라가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살길 바라는
마음이다.
 
참고로..
광해군에 대해서 찾아봤다.. 위키백과와 등등에서.. 물론 책에도 언급되어 있는 부분이다.
학창시절 숙제를 해 나가는 기분으로~^^ 그 때도 이렇게 궁금한 마음으로 공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ㅋㅋ
정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또 한번 굳게 다짐하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갑자기 학창시절에 공부했던 교과서가 너무 보고 싶다. 그리고.. 노트도~ㅎㅎ
 
<참고>
광해군(光海君, 1575년 음력 4월 25일~1641년 음력 7월 1일[1])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는 혼(琿). 선조(宣祖)와 공빈 김씨(恭嬪 金氏)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은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우여곡절 끝에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듯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후금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왕위 옹립에 공이 컸던 대북파의 반발로 당쟁에 휘말리고 말았으며, 이후 서인(西人)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이후 줄곧 인목왕후(仁穆王后)를 유폐시키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살해했다는 '폐모살제(廢母殺弟)'를 이유로 패륜자로 일컬어져 왔으나, 현대에 들어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재조명 여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575년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광해군에 봉해졌다. 어려서 생모 공빈 김씨를 여의고 부왕의 냉대 속에 자랐다. 외할아버지인 김희철(金希哲)마저도 임진왜란 중에 전사하면서 그가 기댈 곳은 없었다. 선조에게 적자(嫡子)가 없는 데다, 서장남인 임해군(臨海君)이 포악하고 인망이 없어 서차남이었던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야사에 의하면 선조가 아들들을 불러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른 왕자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하였지만, 광해군은 소금이라 대답하여 세자로 책봉되었다고 한다.
 
후궁 소생이었지만 1608년 조선 제15대 왕으로 즉위한 광해군은 왕위계승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정비 소생의 배다른 어린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고, 영창대군의 어머니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다가 폐위시켰다. 결국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나 폭군으로 낙인찍히면서, 그는 왕의 묘호도 없이 또다른 폭군 연산군처럼 그저 광해군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명(明)과 후금(後金) 사이에서 슬기롭게 중립외교를 펼친 점과 대동법의 시행과 창덕궁의 중건 등 나름대로 정치적 업적을 이룩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이 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광해군은 본보기가 될 거울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망칠 위험한 거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광해군 시대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사료인 <광해군일기>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 점을 증명하고자 했다. 먼저 광해군의 업적으로 평가되는 대동법은 백성의 지지를 받았으나, 왕실과 당시 집권 북인은 이권을 지키기 위한 본심을 서서히 드러냈고 대동법 추진자들은 하나둘 조정을 떠나든지 귀양을 갔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광해군시대의 실정이 나타났다. 대동법은 물건너 갔고 궁궐짓는 망치소리만 들려왔다. 경연은 문닫았고 영창대군과 인목대비를 폐위했다. 이제 불안한 정치현실에서 집권층의 분열과 공격, 죽임이 빈번하였고, 관직도 상벌도 과거급제도 다 팔아먹는 참담한 현실이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광해군 15년은 결국 ‘잃어버린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