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고드윈 1
박설아.유진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메리고드윈은 특별하다. 남녀의 애정전선 변주가 주축을 이루는 순정만화계에서 독특하게 공포와 추리를 근간으로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공포와 추리라고?, 난 됐어. 음침한 이야기는 질색이거든.’이라며 고개를 젓기 전에 책을 한 번 펼쳐보기 바란다. 그 순간 여러분은 순정만화의 지평을 넓히는데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 이 작품은 잘 기획된 프로젝트에서 시작했다. 만화사의 기자가 좀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을 때, 극화담당 작가가 현대물은 무리라고 대답했고, 스토리 담당 작가가 소설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대답하면서 무섭고, 고전이며, 소설가가 등장하는 메리고드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기획력과 치밀한 사전조사 두 작가의 협력 등이 어울려 만화의 시작과 끝내내 완벽한 균형미를 갖춘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공포와 추리를 근간으로 하지만 만화 곳곳을 온통 피를 뿌리는 장면으로 뒤덮거나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내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공포는 등장인물들의 놀란 눈, 수심이 서린 표정 등으로 대체되고, 범인이라 칭할만한 사람은 작품 초반부터 한 명 밖에 나오지 않는다. 작가들은 좀 더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데 그것은 바로 진짜 공포스러운 것은 사람이라는 명제다. 85년생 동갑내기 작가 두 사람은 등장인물 각각이 가진 욕망들이 어떻게 꿈틀대는지, 그들의 잘못된 욕망들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내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우선 주인공 메리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로 설정되었다. 그녀는 강건한 심정의 소유자 같이 보이지만 전 부인과 이혼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동거중인 남자, 퍼시와 관련된 문제라면 매우 심약한 모습을 보인다. 서로 사랑하기는 하지만 ‘결혼’이라는 틀에 완벽히 부합되지 않는 관계에 불안정해하며 어떻게든 단단히 퍼시와의 단단한 가정을 꾸리고자하는 욕망이 내재되어있다. 이런 욕망들이 퍼시의 전 부인이나 아이들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발현되고 이 미움을 이용하여 악(惡)이 꿈틀대며 자라나게 된다.
한편 퍼시는 메리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만을 말했을 때에도 그것을 발전시켜 글을 써보라고 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지만 이혼문제가 나오면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그저 넘어가려는 욕망에 충실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런 욕망 때문에 현실적인 메리와 간극이 벌어지기도 하고 이 틈새를 통해 악(惡)은 고개를 점점 쳐들게 된다.
이 외에도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아픔과 그 아픔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하는 욕망에 쌓여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등장인물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가면 속에 얼굴을 숨긴 채 ‘나, 범인이요. 그렇지만 나에 대한 추리는 읽는 내내 계속해야 할 걸!’이라며 야릇하게 웃고 있는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이야기 전개에 빠지다보면 처음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마음은 점점 잊혀 질 것이다.
시간을 내어 아픔이 너무 많아 뒤틀어진 마음들이 빚어내는 메리고드윈에 도전해보자. 먹으로 그려낸 배경과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적응되는 순간, 마치 액자소설처럼 만화와 만화속의 만화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전개되는 이야기에 넋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진짜 공포는 사람에 의한 것인지 귀신에 의한 것인지 밝혀지는 찰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