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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 라틴아메리카
장재준 지음 / 의미와재미 / 2021년 1월
평점 :
몇 년전 한 단체에서 주관하는 중남미학교라는 곳에 다닌 적이 있다. 일 주일에 한 번 씩, 두 달에 걸친 강의에서 제시간에 수업이 끝난 적이 없을 정도로 늘 강의의 컨텐츠는 넘쳐났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읽으며 쉽게 감정이입했던 소위 ‘세계 문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서구의 영미권 문학 중심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역사나 세계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대해 생각할 계기가 되었다. 비교적 단일한 지역에서 긴 역사를 이어온 우리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파란만장한 중남미의 역사 - 대항해에 나선 유럽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한 식민지배와 문화말살, 그리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한 나라가 하루아침에 세워져서 단일 작물의 농장국가로 운영되기도 하는-는 충분히 새롭고도 놀라운 것이었다. 바로 그 강의를 이끌었던 선생님이 중남미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입문서에 해당하는 책을 출간하였다. 책은 ‘경계-길 위에 핀 꽃’, ‘아바나-음악의 섬’, ‘혁명-총알처럼 시를 품고’, ‘차스키-발바닥이 날개였던 잉카의 파발꾼’, ‘슈거노믹스-설탕으로 빚은 땅’의 다섯 개의 키워드로 중남미 사회와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데, 각 장마다 짧은 글들이 묶여 있다. 어지러운 중남미 역사 속에서 1905년 하와이 이주를 거쳐 쿠바까지 흘러 들어갔던 한민족의 비운의 역사를 추적하기도 하고, 책의 곳곳에 우리 시인들이 쓴 내용에 어울리는 시들을 인용하기도 하는 등 책의 여기저기에는 우리의 시선으로 중남미를 바라보려는 저자의 노력이 뚜렷하다. 오래전 우리 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숨어있는 서구의 ‘타자의 발굴의 논리’를 지적할 때는 날카롭고, 유구한 쿠바의 음악전통을 설명할 때는 유장하다. (앞으로 찾아 들을 음악과 찾아 볼 영화 몇 편의 제목을 적어두었다.) 이제는 하나의 복제된 문화상품으로 전락해 버린 전설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멕시코혁명 중 여성들의 활약을 다룬 ‘아델리타’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설탕과 카카오가 어떻게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고 중남미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황폐화시켰는지를 다룬 부분도 요즘과 같은 국제화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워낙 방대한 지역을 몇 개의 키워드로 서술해 나가다 보니 다소 산만한 느낌도 있지만, 이미 여행을 마쳤거나, 중남미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버킷 리스트에 그 지역 여행이 올라있는 분이라면 그 입문서로 충분히 의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