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금 미친 사람들 - 카렐 차페크의 무시무시하게 멋진 스페인 여행기 ㅣ 흄세 에세이 6
카렐 차페크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평점 :
1920년대 스페인을 여행한 카렐 차페크의 여행 에세이다. 그의 작품을 에세이로 처음 접했는데 철학자이자 문학 작품을 많이 쓴 작가라는 사실에 놀라웠다. 게다가 체코를 대표하는 3대 작가 중 한 명이라는 걸 알게되어 다른 작품이 궁금하게 되었다. 차페크의 에세이는 눈 앞에 1920년대 스페인의 거리를 그대로 들고 올 정도로 섬세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덕분에 스페인의 열기와 이국적이면서도 다양하게 섞인 문화들이 쉽게 느껴진다. 에세이는 차페크가 체코를 떠나 당시 특급열차를 타면서 시작된다. 창 밖의 풍경과 그걸 바라보는 승객의 입장에서 공감되면서 키득거리게 되는 특유의 유머가 흠뻑 느껴지는 도입이었다. 한편 국경을 열차로 넘나들 수 있는 유럽 대륙의 시민들이 부러워지게 되는데 국경을 건널 때면 바뀌는 직원들의 인상착의에 대한 설명이 나에게는 신기한 감각이었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를 탑승한 기분이라고 묘사되지만, 열차로 국경을 건너는 게 생소한 한국인들에게는 더 흥미로울 지점이다. 몇 년 전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면서 스페인에 처음 가보았다. 그곳에서 길 거리를 걸으며 여유로움과 따뜻함을 자주 느꼈었다. 다른 유럽의 나라들과 다르게 지중해와 가까운 지역의 햇빛과 풍부한 해산물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공존에 눈이 띄었다. 이 책에서 차페크 역시 스페인의 매력에 푹 빠진 것으로 나온다. 길이나 식당에서 마주친 사람들 그리고 스페인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건축 등에 집중한다. 그의 모습은 여행객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본인이 원하는 지점만을 탐닉하는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아는 여행객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자연스럽게 그가 평소에 가진 취향과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다.
특히 그가 세비야를 떠나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쓴 글들은 더욱 공감되었다. 카탈루냐 사람들이라 불리며 그들만의 문화를 구축하는 독립심 강한 지역. 게다가 유명한 람블라스 거리의 유흥과 근교인 몬트세라트까지 그가 알차게 즐기고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 덕분에 내 기억 속에 바르셀로나도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차페크의 다른 저서를 아직 접하지 않았지만 분명 에세이에서 글 쓰기와는 다를 것이라고 느껴진다. 이 책의 마지막 해설에서 차페크를 설명하면서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라는 설명이 이 책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스페인을 다녀오지 않아도 그곳에 도착해 여행하는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기가 그렇듯 타인의 세계가 넓어지는 순간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