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사유
박기원 글, 김은하 그림 / PageOne(페이지원) / 2010년 12월
품절


나는 원래 술을 좋아해서-그렇다고 많이 마시거나 취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물론 혼자 집에서 맥주 한 캔, 와인 한 잔씩 마시는 것도 상당히 좋아한다. 축제 때는 선배가 칵테일을 팔고 남은 술들로 학생회실에서 친구들과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클럽 파티처럼 마무리를 하기도 했다. 물론 바텐더는 나였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넘쳐난다. 대학교 1학년 때 멋모르고 막걸리를 궤짝으로 마시다가 2박 3일 앓아누운 일, 추운 겨울날 친구가 술에 취해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학교 화장실 라디에이터 옆에서 신문지 깔고 밤샜던 일 등등
그렇게 술과 관련된 추억들이 쌓여가고, 또 새로 만들어가고.

술에 관한 에피소드를 듣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음주 사유’는 무한 공감을 보내며 읽게 된 책이다. 비단 에피소드들만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손석희가 아닌 손사케가 진행하는 백분 토로에 술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백과 두보가 나와 펼치는 이야기들, 나폴레옹이 귀향가다가 탈출해서 우리나라 전라도에 표류하게 된 후 와인대신 복분자, 치즈 대신 삼합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 등 문학적 사유와 상상력이 발휘된 에세이다. 공저인 김은하 씨의 카툰은 ‘이우일’ 씨를 연상케 하는 그림들로, 귀엽고 털털한(?) 카툰들이라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연말이면 우리는 왜 술을 그렇게 마셔대는 걸까. 마치 그렇게 마셔야만 1년간 힘들었던, 고통스러웠던, 고민했던 일들을 보상받기라고 하듯 마셔댄다. 그렇지만 그렇게 술을 마셔대는 건 비단 ‘술’이라는 액체를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일 때문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시간 없다는 말로 소홀했던 친구들과 나에 대한 보상 아닐까. 나에게는 그런 일종의 술을 마시는 이유, 당위성에 대한 핑곗거리도 제공해주는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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