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사라지는 시간 - 오이겐 루게 장편소설
오이겐 루게 지음, 이재영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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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소설을 이렇게 어렵게 읽어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을 특히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저자가 그리 친절하지 않다. 물론 책을 쓰면서 해외의 독자들을 굳이 고려하지 않겠지만 독일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얄팍하다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상당한 정보를 전제한 체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태백산맥에는 지역명칭이나 지역 사투리가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같은 한국 사람들도 전라도 사투리에 대해 잘 모른다면 그러한 표현들이 전달하는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태백산맥을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했을 때 외국인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은 우리의 그것과 사뭇 다를 것이다. 둘째, 이야기의 장이 바뀔 때 이야기를 풀어가는 관점도 바뀔 때가 있다. 한참 읽다보면 말하는 사람이 바뀌어 있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봐야했던 적이 잦았다. 셋째, 시점의 변화와 더불어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은 것도 이해에 다소 불편을 초래하는 요소이다. 극적 효과를 위해 시간을 섞어 배열하는 것은 흔히 이용되는 기법이다. 그런데, 다른 요소들과 얽히다 보니 장애 요인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독일 역사에서 나름 의미 있는 해들을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으로 선택한 것 같은데, 이야기와 크게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선 간파해 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2001년의 이야기에서는 9.11 사건을 살짝 언급하는데, 그것 말고는 이야기 전개상 그 언급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르겠다. 스푸트니크도 언급되지만 그 역시 모르겠다. 넷째,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석이 후주 처리된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으며 주석을 다 챙겨서 볼까. 각주 처리되었더라면 이야기를 읽어가다가 필요할 때 슬쩍 보고 넘어가면 되는데, 후주 처리 되어 있어서 처음 몇 번은 찾아보다가 나중엔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 버리게 되었다. 학술적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지 않은 이상 주석은 최소한으로 하고 가능하면 각주로 달면 좋을 듯 하다. 마지막으로 인물들의 이름이 종종 애칭으로 불리우는데, 애칭으로 부르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인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나도 사샤라는 이름이 등장했을 때 새로운 인물로 착각하고 그 맥락에서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혹시 앞부분에서 놓친 것은 없었나 다시 살펴보기를 몇 번 하다가 그것이 알렉산더의 애칭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되었던 적도 있다.

 

형식적인 장애가 많이 있지만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그 상처는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전달되는 듯 하다. 4대에 걸쳐 겪어야 했던 이념 갈등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도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소시민들, 사실 이념이나 사상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소시민들의 삶에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삶이 좌우되버리는 불행도 감내해내야만 한다. 읽는 내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역사의 흐름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인물들, 어쩌면 우리네 이야기일 수 도 있겠다, 의 삶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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