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기傳 -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김미옥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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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기傳]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얻어걸린 김미옥샘의 글을 읽고 매일 찬탄을 했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지만, 음악에 관한 미옥샘의 관심과 애정, 깊이는 정말 놀라웠고 그걸 글에 엮어 풀어내는 솜씨가 절묘하고 마음을 움직였다.

사람 보는 눈은 다 같아서 미옥샘의 글을 읽고 좋아하는 팬덤이 생기게 되었고 댓글 창은 곧 사람들로 터져나가게 되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분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미옥샘은 그러거나 말거나 무서운 속도로 읽고 재미난 서평과 일상 글을 올려서 페북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셨다.

미옥샘은 검증된 작가 책의 서평도 쓰시지만 오랜 세월 묻힌 책,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서평을 쓰시는데 그 관심과 애정이 놀랍다. 절판된 책을 부활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나는 이분의 서평도 좋아하지만 일상 글을 정말 사랑한다.

누군가는 불행을 전시한다고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행을 전시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전시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한다. 미옥샘은 본인의 불행을 딛고 우뚝 솟은 후에, 본인의 불행했던 과거를 눈물과 웃음의 소재로 승화시켰다.

작가로서 본인의 과거를, 속내를, 가족을 이렇게 다 내보이는 것은 쉬운 일인가? 나는 여전히 나의 아픈 상처를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이 무섭고 두렵다. 내게는 이런 용기가 없다. 미오기전을 펼쳤다가 그대로 책에 파묻혀 버렸다.

비 오는 주말 오후에 촉촉한 감성으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새 앨범을 들으며 책을 읽다가 나는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해서 자식을 키운 것이 아니었다. 혼자 자식들을 키우다 보니 강해진 것이었다. ....중략

나는 유년기와 아동기를 욕설의 세례로 풍요롭게 자랐다. 물론 내가 학습받은 내용을 전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 반 친구와 자지러지는 입씨름을 할 때 어른의 욕설을 능숙하게 사용하니 담임 선생님은 내 현란한 비속어에 기함을 했다. "네년을 낳고 네 에미가 먹은 미역국이 아깝고나"....중략

방언 터지듯 입에서 나오는 욕설과 달리 나는 아름다운 문장을 좋아했다. <빨강머리 앤>의 끝줄의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화롭도다.' 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독후감을 썼는데 읽어본 선생님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돌아온 탕아' 보듯 반색했고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보듯 예뻐했다.

16살부터 엄마와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살면서 나의 언어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입에 올릴 단어 선택에 신중했고 아름다운 문장에 심취했다. 하, 그런데 내 아들의 베이비시터를 엄마가 자처했다. ...중략

어린이집에서 연악이 왔다. 여자아이들에게 B군이 "야, 이 미친년들아!"를 시전한 것이다. 나는 그날 햄버거를 뜯어 먹는 B군에게 왜 욕을 하면 안 되는지 눈물로 설명했다. 그날 B군이 내게 한 말은 이 것이었다.

"내가 욕을 하면 엄마가 슬프구나. 근데 할머니는 내가 욕을 하면 막 웃거든!" -김 여사 해탈기 중

미옥샘의 글은 눈물이 나오다가 웃음이 나온다. 딸로서, 아들을 기르는 엄마로서의 삶이 진하게 묘사되어 공감할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 마저 며느리인 미옥샘을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나를 편애한 것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언제든 훌훌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막내아들의 여자, 남자가 필요 없는 여자는 위험인물이었다. 그 불안 때문에 시어머니는 짐을 싸서 내 집에 비집고 들어왔다. 빨리 자식을 낳으라고 계속 강요했다. 내가 아들을 낳자 비로소 안심했다."

"며느리가 나를 종이 다른 인간으로 보는 것 같다. 내가 키운 적도 없고 등록금 한 번 준 적 없으니 이 정도 사이면 적당할 것 같다. 1년에 한 두어 번 보면 괜찮은 친인척이 아닌가."

딸, 엄마, 며느리, 시어머니로서의 미옥샘은 당당한 투사다. 나는 이즈음에서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Op. 10의 3번, 이별의 곡을 무한반복해서 듣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를 쳤다. 꽤 긴 시간 동안 이별의 곡도 치고, 내가 좋아하는 바흐의 곡,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까지 치고 여러 생각으로 좀 울기도 했다. 나를 위해 피아노를 친 적이 언제였던가..

"재클린 뒤프레의 첼로를 들으려다 오래전에 저장한 동영상을 떠올렸다. 그녀가 사랑한 다니엘 바렌보임과 이츠하크 펄만, 핀커스 주커만이 풋풋한 젊은 시절 연주한 것이다. 병든 그녀를 보내고 바렌보임이 다른 여인을 찾아 떠난 후 그녀는 홀로 병석에서 지내다 고독사했다. 하지만 그들이 왁자하게 웃으며 연주했던 젊은 날의 음악은 내 어린 말의 라디오 노래처럼 우주로 날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젊은 모습 그대로 우주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내 아버지도 저 허공 어디에서 뽕짝을 부르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한밤중 음악을 들을 때 별을 보는 이유다."

"누군가 울면 가슴이 미어졌다. 혼자 우는 눈물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가끔 무방비가 되어 버린다.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우는지가 중요했다. 나도 누가 왜 우는지 물어봐 줬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이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술집 여자의 밥 한 공기 같은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고 살았다. 내가 사람의 직업이나 계층을 보지 않고 인간성을 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한 때 그녀를 찾으려 한 적이 있었다. 갚아야 할 밥 한 공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적도 찾지 못했다. 그 직업의 종사자들이 흔히 그렇듯 애숙이도 가명이었을 것이다. 밤에 비가 내리면 빗방울이 우다다다 뛰어가던 양철 처마가 기억난다. 빗소리가 내 분노를 일깨우듯 그녀의 기억을 다시 깨웠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고 있을지 모를 그녀을 위해 기도한다. 당신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세상의 모든 애숙이에게 축복을." -세상의 밥 한 공기 중..주말 오후부터 시작된 읽기는 한밤중에 마무리가 되었다. 밑줄 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여러 독자들이 읽기를 바란다.

따스한 어른의 위로가 필요한 내 안의 어린이를 갖고 있는 '어른이' 들에게 이 한 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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