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고1 국어 교과서에서 '눈길'을 만나고 처음으로 이청준의 소설을 접했다. 이청준 작가의 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듯한 단편집. 그리고 눈길에서 너무 시달려서 그러나. 내신 준비를 할 때 우리는 문학작품에 사정없이 형광펜을 긋고 그 밑에 숨겨진 함축적 의미,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 화자의 감정 등등을 분석하고 암기해야 한다. 이 단편집 역시도 민족, 그리고 그들의 한이라는 쉽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교훈적이면서도 의미있는 주제를 담고 있어서 마치 내신 차원의 분석을 하면서 읽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읽으면서도 '이 소설들을 재수생 내 동생한테 읽혀줘야 하나. 수능에 나올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인데'라고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면서 약간 어이가 없기도 했다.

 

쉽게 읽혀지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기껏해야 하루에 한 편 겨우 읽고 '나머지는 내일 읽어야겠다'라며 덮어버리곤 했다. 작품의 무게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23년산 어린 나에게는 소설을 읽으면서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소재의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먹먹한 마음과 안타까운 그들의 한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읽으면서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지는걸보니. 조금밖에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던 조상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나에게는 민족이라는 단어보다는 알바라는 단어가 더 와닿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아닐까. 조국에게 거의 버림받다시피한 주인공들과 화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그들이 필요가 없을 때 내팽겨쳐 두었다가 이제 겨우 살아갈만 할 때가 되니 대인배마냥 다시 감싸주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조국을 잊기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고 한국을 다시 떠올릴 때면 과거의 아픈 기억에 괴로워하는 이방인이 되었다. 이청준 작가가 서술해놓은 그들의 복잡한 감정을 전부 이해할 수 없음에 그저 안타까울뿐.

 

도서관에 가서 이청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뒤적거려봤다. 하지만 빌려오지는 못했다. 그의 깊이 있는 작품을 읽을만한 준비가 안 되었다는 생각에 그의 글을 읽기가 미안해지는 마음이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불과 반세기 전에는 흔했던 일이었고 그 때의 아픔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는 것이 약간 충격적이었다고나 할까. 한국문학은 민족적인 소재, 그리고 한과 공감이라는 부분에서 강점을 지닌 작품인 것 같다. 한국문학의 매력들을 모두 지닌 소설집. 오랜만에 진지한 표정으로 진득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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