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걸렸던 자리
구효서 지음 / 창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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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장편소설과는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수 많은 매력들이 있겠지만 몇 가지를 골라본다면 (지금의 나처럼) 긴 장편소설을 진득하게 읽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잠시나마 여유를 선사해주고, 적은 시간을 소비하여 긴 여운을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책읽기가 가능하다는 점 등이 있을 것이다. 내가 친구에게 단편소설집 한 권만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그는 자신있게 구효서 작가의 '시계가 걸렸던 자리'를 추천해주었다. 비록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아니었지만 짧은 이야기로 전해주는 긴 여운만은 단편 중에 최고로 꼽을 수 있을거라면서....

 

책에는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나'가 예전에 살던 집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시계가 걸렸던 자리'. 남편, 아들과 함께 혜성을 보기 위해  천문대에 방문하여 하룻밤의 감정들을 서술해내는 '밤이 지나다', 어머니의 유품인 책 한권을 통해 어머니의 과거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금 가마니', 러시아 아무르 지방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의 이야기인 '자유 시베리아', 이라크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 여인이 예기치 못했던 사고로 한 가족의 도움을 받게 되며 생긴 묘한 이야기 '앗쌀람 알라이 쿰'. 몇 십년간 이용해왔던 이발소를 두고 전개되는 '이발소 거울', 영국에서 만난 딸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 '호숫가 이야기'. 조금 모자라보이는 한 남자와 완벽해보이는 여자를 둘러싼 소문을 흥미롭게 서술한 '스프링쿨러의 이야기 2', 배호를 좋아하는 한 남자의 기묘한 삶 '달빛 아래 외로이'....

 

친구의 추천처럼 정말 짧은 소설들이었지만 읽고 난 후의 여운이 대단했다. 모두 다른 소재와 주인공들을 다룬 이야기들이지만 대부분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을 기억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을만큼 작가의 문체도 중독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나는 밤에 잠자기 전 책을 읽는 독서 습관을 갖고 있다. 자기 전 이 책의 단편 하나를 읽고 자리에 누우면 이야기의 여운이 한없이 지속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재미는 별로 없을거라고 추천한 친구가 귀띔해주었는데 나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대부분이 1인칭 시점으로 전개가 되어서 그들의 시선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감정들과 추억들에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다.

 

구효서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본다. 87년부터 수많은 장편, 중단편소설들을 지어낸 배테랑 작가라는 것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알 수 있었다. 이 책에는 현실에서 과거로의 회상, 하나의 경험에서 기억해낸 추억들을 다룬 단편들이 대부분이라 이야기 한 편을 읽기 시작하면 놓지 못하게 만드는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부분이 베테랑 작가의 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구효서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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