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워커홀릭 - Walk-O-Holic
채지형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너무나 만족스러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이 되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답답한 도시를 떠나 자유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설레이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돈, 시간, 내가 가꾸어 나아가야할 스펙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여행이라는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공부하기 싫으면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내가 그 시절 상상하던 나의 모습은 큰 가방을 매고 유럽의 고풍스런 도시 사이사이를 거니는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상상하던 미래의 나이가 된 지금의 나의 모습은.... 아르바이트를 해도 용돈 조달하기도 버거울 정도이고, 학점, 토익, 영어 회화 등, 어느 것 하나 포기하고 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부모님의 조달을 받아 유럽 패키지 여행을 갔다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는 그저 부러운 이야기일뿐, 나는 죄송스런 마음에 부모님께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그래서 생긴 취미가 여행서 읽기이다. 비록 나는 못갔지만 세계를 여행한 여행자들이 쓴 수기, 여행기, 경험담을 모아놓은 여행서를 읽는 동안에는 마치 그곳을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뉴요커가 될 수도 있고 유럽의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있기도 한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경험을 대리만족 할 수 있다는 매력. 그런 매력이 여행서적에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여행서적들도 요즘 워낙 많이 출판되다 보니 재미없는 것들도 있고 책들마다 비슷비슷해서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한동안 읽지 않고 있던 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1년은 240쪽의 소설 중에 3페이지에 불과하다. 이 책 표지에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문구이다. 나에게 1년은 어떠한 의미인가. 1년이라는 기간이라면 토익 점수를 800이상으로 올릴 수 있는 기간, 영어회화에 능통해질 수 있는 기간, 누적학점을 3.8이상으로 올릴 수 있는 기간. 여하튼 무언가 하나쯤은 이루어내야하는 그런 소중한 시간이다. 뭐.... 그 결말은 항상 좋지는 않지만.... 이런 내가 표지에 쓰여있는 그 문구를 읽는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240쪽 중 3페이지뿐인 1년이라는 시간을 나는 왜 그렇게 매여 살아가고 있었을까... 저자는 그런 생각을 하며 1년간 세계일주를 하게 된다.

 

치밀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워 여행을 떠나는 저자. 그리고 그 여행길에 따른 저자의 감성과 여행지의 모습들을 정성스레 담은 책.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며 생생하게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설레이기도 했지만 책을 덮는 순간 가슴 한 켠이 뭉클해졌다. '나는 이런 여행을 내 일생동안 떠나볼 수 있을까. 못 떠나겠지'라는 생각이 엄습하였던 것이다. 어떤 드라마에서였나. 주인공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거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거지.'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내내 나의 이상과 현실의 거리감이 더 멀어짐을 느끼며 슬픈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즐거웠다. 저자를 따라 나도 아프리카를 거닐었고,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의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방학동안에 지친 나의 심신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내일 여름피서를 떠난다. 외할머니 댁 시골로 떠나는, 유럽여행에 비하면 초라한 여행이지만 짧은 기간동안 나 자신을 찾고 여유를 찾는 여행이 되길 빌며 짐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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