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박완서 작가의 글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그 여자네 집' 소설을 마지막으로 하고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니 3~4년 만에 만나는 그녀의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엄마의 말뚝, 나목, 아주 오래된 농담 등등... 수험생활로 힘겨워하던 나를 보듬어 안아주고 감싸안아 준 소중한 책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지라 대학생이 되고 마음이 평온해지니 박완서라는 작가를 슬며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고 2때는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 때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과 산문들은 외할머니의 따뜻함을 선사해주었고 마음놓고 울으라고 포근한 문체들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한창 철 없이 놀았던 대학 1학년, 2학년이 지나고 이제 대학생활의 지루함과 허무함이 밀려올 즈음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박완서 작가의 산문 작품들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소재들이나 문체나.. 그러나 그때마다 다르게 느껴지고 매력이 느껴지는 것은 그 때마다 변하는 나의 감정들 때문일 것이다. 매번 나도 모르게 감정 조절을 못하고 버거워할 때에도 그녀의 글들은 신기하게도 나의 마음에 꼭 드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일제시대, 어려웠을 시절의 이야기, 자연과 함께하며 깨닫게된 교훈, 주변 사람들과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들.. 오히려 연세가 들어가실수록 연륜있고 맛깔스러운 글을 쓰시는 것 같다. 하지만 소녀같은 여린 심성은 그래로인듯....

 

이번 산문집의 특징은 앞부분에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 마당에서 이리저리 가꾸는 화단의 이야기가 반이다. 사실 나는 식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동물들처럼 먹이를 준다고 해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처럼 마음을 교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가만히 서있다가 조금 신경 안 쓴다 싶으면 시들어버리는 존재들.... 그런데 자신이 가꾸는 소중한 것들과의 교감을 다룬 글들을 보니 약간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다. 이 책과 함께 배송된 과꽃을 한번 키워봐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나도 소중하게 잘 키우면 과꽃 친구와 교감할 수 있을까. 나의 힘든 하루, 고민스런 마음들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욕심에서이다. 70이라는 연세에 그토록 여리고 아기자기한 마음을 지닌 작가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지루했던 방학이 거의 지나간다. 방학의 끝 줄에 만난 그녀의 책은 나의 지루함을 조금은 덜어주었고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편안한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오랜만에 그녀의 소설들을 하나, 둘 씩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학을 아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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