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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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우리 집안에서는 만화책을 금기시해왔다. 만화책은 공부할 때의 집중을 방해하고 안정적인 정서를 흐트러 놓는다는 어른들의 주장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내가 읽고자 한다면 책방에 가서 마음껏 만화책을 대여해서 읽을 수 있긴 하지만 어렸을 적 부터 안 읽어버릇한 만화책은 그냥 일반 책 보다 읽기가 어렵고 읽고 나서도 기억해내기가 어렵다. 주변에 사람들은 이런 나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고들 하는데 어쩌겠는가.. 종이 한 페이지에 여기저기 박혀있는 글씨들을 찾아다니느라 진을 빼고나면 너무나 힘들어지는 것을....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약  2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쉽고 간단 간단한 만화책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올라있다. 평양 프로젝트, 이 책도 내가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쉽고, 재미있고, 유쾌한 만화책이었다.
 
♪ 북한, 멀고도 가까운 나라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북한을 빨갱이로 몰아넣고 무조건 나쁜 이들이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께서는 북한 사람들이 팔이 하나가 더 달렸다거나, 눈이 하나 밖에 없는 외계인 처럼 생겼을거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북한이 이제는 한민족이라는 이념 아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자연스레 외칠 수 있게 되었고 틈만 나면 남북교류라는 명목 아래에 다양한 문화교류들이 행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점점 빈곤과 인권 유린의 상황에 빠지고 있고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무기와 같은 극단의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좀 친해지자고 나눠준 곡물, 곡식 등의 구호품들의 의미가 상실되는 순간이다. 이 책은 이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 않다. 만일 이 책 역시도 모든 사람들이 논하는 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면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았을 것이고, 재미있게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 이 책은 평범한, 내 주변에 사람들처럼 지극히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남한의 글쟁이인 주인공은 남북 교류의 목적으로 북한에 방문하게 되고 다양한 북한 사람들과 문화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했던 상황, 서로의 통하지 않는 언어 때문에 일어나는 웃지 못할 상황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북한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는 사람 사는 고장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 통일, 외면할 수 없는.. 언젠가는 다가올 현실
 
어떤 이들은 통일이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통일이 되면 남, 북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문화적 충격은 당연지사고, 현재로서 북한보다 남한이 더 부유하기 때문에 우리가 피해볼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또한 통일 전후로 일어날 복잡하고 위험한 정치 상황들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통일은 언젠가는 도래하게 된다. 우리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간에, 10년 후가 될지 100년 후가 될지는 모르더라도 언젠가는 다가오게 될 우리의 현실이다. 북녁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화가 나고, 외면하고 싶지만 언젠가 다가올 통일을 위해서는 그 때의 충격을 덜기 위한 준비들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이 책이 어느 정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다른 말들은 읽는 나를 혼란스럽게도 만들었지만 즐겁게도 만들어 주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벼룩이나 뵈기 싫은 곤충으로 부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또 북한에서도 부자와 빈자가 있고, 사람들끼리 모여서 당구를 친다거나, 시장에서 불법 남한 드라마 비디오들이 떠돌아 다닌다는 부분들에서는 굉장히 놀라웠다. 꽉 막히고 답답하기만 할 것 같은 북한도 자본주의의 물결에 약간씩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이야기들일 것이다.
 
♪ 다양한 캐릭터들, 북한의 일상을 전해주는 유쾌한 작가
 
지금까지는 이 책의 의미들 위주로 이야기하였다면 이 책의 속 이야기에 대해 논해볼까 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약간은 엉뚱한 남한 작가, 소심하지만 한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한결 같은 김철수, 그리고 그의 사랑 리순옥, 그들이 전해주는 북한의 일상 이야기는 전혀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다. 만약 이 책의 작가가 그림이나 글들을 잘못 썼다면 북한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약간은 눈살 찌뿌려질 내용들을 전달해줄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가 항상 들어온 정치나 이념, 국가의 문제가 아닌 사람들의 향기를 전해주기 위한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 작가가 남한으로 돌아가면서 눈물고인 얼굴로 한마디 한다. '리순옥 동무, 울지마세요. 뭐.. 멀리가는 것도 아닌데요..' 이 한 문장이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박혀버렸다. 평양과 서울, 자가용으로 2~3시간도 안 걸릴 가까운 거리. 그 가까운 거리를 우리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 하지만 북한은 남한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한글을 쓰고 있고 밥을 주식으로 하며 같은 조상에서 나뉘어진 한민족이다. 평화의 시대에 발 맞춰 그들을 조금더 친근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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