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중용은 나에게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지는 단어이다. 내가 어렸을 적 부터 내 주변의 어른들은 "다른 이와 맞서기 보다는 가운데에서 중심을 잘 잡아라.", "다른 이들과 갈등하기보다는 함께 의견을 타협하라"고 가르침을 주셨다. 나 역시도 그 가르침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내 생애 21년간 타인과 말다툼 한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유연한 의견(어찌보면 줏대없는..)을 지니며 살아왔다.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는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반대로서 불러일으켜질 갈등이 두려워 그 의견에 따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난 몇 년전 까지만해도 나의 이러한 태도가 사회 모든 곳에 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자연스러워 졌다. 아직 사회에서 서로의 주장을 내새우는 기술이 미숙하기는 하지만 점점더 자연스러워지고, 발전해가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장정일의 공부'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중용'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지라고 이야기한다. 중용을 나의 습관처럼 달고다니던 나로서는 충격적인 문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있는 그의 문체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었고 그의 주장 하나하나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또 나의 의견과 비교해볼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책은 독후감집이다. 인문학 서적들을 읽고 책의 내용과 그의 의견을 적절히 조합한 리뷰이다. 나도 일주일에 1~2번 정도 리뷰를 즐겨 쓰지만 그의 리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책을 읽자마자 금새 그의 리뷰와 나의 리뷰 사이 두가지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일단 첫번째 차이점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지식과 상식, 글 솜씨의 차이이다. 나는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끄적이는 정도이지만 그는 그 책 한권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와 관련된 부수적인 정보들을 모두 섭렵한 후에 그 책을 평가한다. 책 한권 겨우겨우 읽어내려 간 후에 기억에 남는 구절 조금 되새기며 타이핑하는 태도로 리뷰를 쓰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한 없이 느꼈다. 두번째 차이점은 책을 접하는 태도였다. 나는 '책은 모든 지식의 근원이다'라는 생각과 태도로 책 안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되니 이 책을 읽을 때는 좌파였다가, 저 책을 읽으면 우파로 돌아서는 변덕스런 의식을 지니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한없이 추구했던 '중용'이라는 태도와는 잘 어울리는 독서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책을 섬세하게 읽어내려가며 자신의 생각과 부합되지 않는 부분은 참고 서적들의 자료들을 수합하여 반박을 한다. 마치 그 책의 저자를 설득하는 것 처럼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너무 극단적인, 굽히지 않는 생각은 책을 읽는데 피곤함을 느끼겠지만 어느 정도의 자기 의식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너무 내가 책을 쉽게만 읽어오지 않았나 반성을 하기도 하였다.

 

나는 장정일 작가를 좋아한다. 주변에서 "그 사람은 좌파야.."라는 경고를 많이 듣기도 하였지만 그런 이상을 떠나 그의 인간됨을 좋아한다. 학업을 중간에 그만 두었을지라도.. 사회에게 다수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주장들을 펼치는 사람일지라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에 걸맞는 지식들을 지니려 끝없이 노력한다. 사실 그의 책들을 일찌기 접했을 때는 '냉철하고 딱딱한 사람일 것이다'라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KBS TV, 책을 말하다'에서의 그의 어눌한 말투를 접하고 나서는 정말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의 생각에 동조해줄만한 꺼리들은 많지 않지만 그의 곧은 주장들은 언제나 나를 고민하게 만들고 나의 입장을 굳게 굳혀준다. 나도 내 의견을 말할 때가 된 듯 하다. 하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주장에 맞설 때면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엄습한다. 그럴 때면 장정일의 글을 읽어보면서 자신을 얻어야겠다. 외로운 그의 외침들을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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