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작은 책
호세 안토니오 미얀 지음, 유혜경 옮김, 페리코 파스토르 그림 / 큰나무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요즘 깝깝한 일이 너무나 많다. 과외일이 그러하고, 시험공부가 그러하며, 학점에 대한 압박도 그러하다. 오늘, 너무나 복잡한 마음에 잠시 열람실에 들러 책꽂이 사이사이를 기웃거리다가 얇고 말끔한 책을 한권 발견했다. 이름하야 [이름없는 작은 책]. 이 책이 이름 없고 작은 책이라는 말이 아니라~ 요 책의 주인공이 이름없는 작은 책이다.(응?! 뭔소리..-_-b 읽어보시면 알아요..ㅎㅎ^^;;) 여하튼, 약 100 페이지 밖에 안되는 이 책이 그 답답하던 나의 기분을 업~ 시켜주더라구.... 진흙 속에서 찾은 진주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 책이 살아서 움직여요~

 

동화스러운 이 책은 책을 의인화한 이야기이다. 책들이 자기들끼리 결혼해서 아기책을 낳고,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또 사람처럼 가지각색의 성격을 지닌 책들이 존재하고(과학책, 군사관련책, 요리책, 백과사전 등등등..) 그 특색들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꾸려나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할아버지, 할머니책은 손자책을 따뜻하게 사랑해주고 부모님책은 아기책의 성공적인 미래를 기원한다. 책들의 사람같이 능청스런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 빠져있다보니 무의식적으로 키득거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삽화가 너무너무 귀여워..^^

 

이 책은 스페인에서 어린이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다보니 책 속에 들어가있는 삽화들도 너무나 귀엽고 정감이 간다. 깐깐해보이는 엄마 과학책, 근엄해보이는 전쟁 할아버지책, 칼을 들고 정신사납게 재잘재잘 설쳐대는 만화책 무리들.. 이야기의 아기자기한 구성에 어울리는 등장책(등장인물은 아니니까..)들이 삽화로 생기있게 움직인다. 만약 이 책에 삽화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재미가 몇 배는 줄었을걸?

 

# 이렇게 얇아도 나름 성장동화라구요~

 

주인공은 "옛날 옛적에...."와 "끝", 이렇게 단 두줄만이 적인 이름없는 작은 이야기책이다. 다른 친구들은 금방금방 이야기를 늘려가고 페이지수를 부풀려가는데 이 주인공 책만이 자랄 생각을 안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님책들은 자라지 않는 작은 이야기책을 보며 걱정을 하고, 자라는데 좋다는 방법들을 모두 써보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할아버지책을 만나고나서 요리책 아주머니와 집에 돌아가던 길에 '백과사전은 모든 것을 알고있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접수하게 된다. 작은 이야기책은 얼른 자라나고 싶은 욕심에 도서관 제일 끝 줄에 살고 있는 백과사전을 만나러간다. 책장 하나, 하나 디디고 올라가면서 연극책, 기술책, 제본, 심지어는 좀벌레까지 만나며 내면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뭐.. 자라는 법을 결국 깨닫지는 못하지만..

 

# 책의 결론은 이렇다.

 

작은 이야기책은 자신이 작고 어리다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책은 그런 손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달래준다.

 

"네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넌 이 세상에서 뭐든지 될 수 있는 거란다. 예를 들면 오늘만 해도, 넌 제일 높은 책장 선반의 안내책이 되었고, 또 좀벌레 숲의 투사가 되지 않았니. 지금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잠드는 아이가 되었고. 그밖에도 많은 게 될 수 있단다"

 

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작은 이야기책과 같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 하고 싶은거 다 해보고 싶다...' 빨리 자라나고 싶어하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미워하면서 멋진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하지만 이렇게 자라나고보니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눈물나게 그리워진다. 어느 이름없는 작은 책의 빈 여백은 무엇이든지 적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에 행복하고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나를 한번 돌아볼까. 벌써 1/4가량이나 채워버린 '내 인생'이라는 책은 즐거웠던 내용들보다는 후회스런 내용들이 더 많이 적혀있는 듯 하다. 하지만 아직 써내려간 부분보다는 빈 여백이 더 많은 연습장이기에 안도감이 들기도.... '아락실의 멋진 인생'이라는 책을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서 내일도 즐겁게 살아가야지...

이 책.. 왠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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