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을 따라

  책은 강물과 닮아있었다. 굵직한 뼈대를 따라 잽싸게 흐르기도 하고, 천천히 미끄러지기도 했다. 문화유산 답사기는 자칫하면 두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워낙 우리는 문화유산을 배워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왔고, 재미없다는 인상을 심어줄 만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강편>의 서문을 읽으면 누구든 그런 두려움이나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나 제자에게 이야기를 하는 기분’으로 글을 쓴 저자의 심정이 담겨있다. 우리는 경청하고, 간접경험을 하는 기분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알아야만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은 3부로 이뤄진다. 남한강의 물줄기를 따라서 마을과 여러 문화유산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문학을 항상 곁들인다는 것이다. 문화유산이야 요즘 같은 시대에는 검색으로도 충분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문학을 누리는 것은 어렵다. 저자는 문학작품을 적절히 활용하여 문화유산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더욱 풍부하게 전달한다. 문학작품이 주는 울림과 문화유산을 보면 와 닿는 것들이 이어져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양8경은 듣기만 많이 들었지, 단 한 번도 가보거나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책에서는 단양8경의 유래를 먼저 설명하고, 8경들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직접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솟아나서 괴로웠다. 또,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것들이 있는데도 외국에 나가서 보는 문화유산에 감동하는데 급급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마지막 장까지 읽는 내내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국 사람에게 어쩌면 우리나라의 지역을 설명해줄 수 없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속상했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 먼 곳이 아니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한국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저자는 부록으로 답사 일정표를 첨부했다. 물론 서문에서 일정표를 볼 수 있겠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정표는 내게 영업비밀과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얼른 답사 일정표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보자마자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날짜 별로 일정표가 있고, 당일치기도 물론 있다. 미술사학 답사 일정표까지 있어서, 테마별로 일정별로 답사를 떠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지역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안타까웠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나만 알고 있을 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만 한다고 마음먹었다. 방학마다 여행을 떠나는데, 겨울 여행은 이미 남한강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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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르세데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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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 추리소설에서 돋보이는 것은 단연 사건이다. 주인공들을 움직이게 하는 사건이 터지면 소설은 시작된다. ‘셜록 홈즈’ 시리즈만 떠올려도 이해가 쉬울 것이다. 책을 덮고 나면 머릿속에는 어떤 사건이 그려진다. 심지어는 그것이 소설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스티븐 킹의 첫 탐정 추리소설은 인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건은 당연히 일어나지만 서사를 진행시키는 것은 인물들이다. 『미스터 메르세데스』에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흥미가 떨어졌을 것이고, 지금까지의 추리소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메르세데스 살인범을 쫓는 형사 호지스는 은퇴를 하고나서도 전직의 열정을 지닌 인물이다. 메르세데스 살인범의 편지에서 추리는 시작되지만, 사실 그는 다른 사건들에도 관심을 잃지 않는다. 호지스는 관찰하고, 주시하고, 언제든 사건을 포착하려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메르세데스 살인범인 브래디에게 목을 매는 것이 납득이 간다.

  브래디는 전형적인 범죄자의 상에 가까운 인물이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다른 이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식상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었지만, 현대에 맞게 인터넷을 잘 다루는 인물로 나와서 괜찮았다.

  주목할 만한 주변인물은 제롬과 홀리다. 그들은 호지스가 미처 닿지 못하는 컴퓨터라는 영역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그를 돕는다. 사실 중반부부터는 제롬이 아니었다면 호지스가 브래디와 싸우는 데 힘이 들었을 수도 있다. 호지스는 날카로운 직관과 사건을 마주한 수많은 경험으로 무장된, 어쩌면 구시대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브래디와 맞설 인물로 제롬을 택한다. 그리고 제롬은 끝내주게 호지스를 돕는다. 서로를 돕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에 홀리 마저 호지스를 도와 브래디를 체포하는 데 일조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브래디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타인의 관심을 받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다. 호지스는 타인과의 관계를 잃지 않고, 오히려 잘 맺어가며 사건을 해결한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반추하게 된다.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했기 때문에 입체적인 느낌이 강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여서 긴장감이 떨이지지 않을까 우려를 했지만 그럼에도 흥미진진했다. 그것은 인물들의 관계 덕분일 테다. 사실 탐정 추리소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심을 둬야 하는 것은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단순한 추리소설로 끝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물들이 맺어지며 혹은 이별도 하며 이끌어가는 삶, 그것이 곧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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