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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아그니에슈카

 

오염된 숲 우드의 재앙을 막아내며 폴니아 왕국을 지키는 마법사 드래곤’. 그는 자신의 탑 근처 마을인 드베르닉에서 십년마다 열일곱 살의 소녀를 데려간다. 십년 후에 풀어주는 전통이 있고 그에 따른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마을사람들이 데려갈 소녀로 유력하다고 생각했던 카시아대신 엉뚱하게도 아그니에슈카를 선택하는 드래곤. 솔직, 당돌, 자유분방한 소녀 아그니에슈카와 차갑고 이성적인 마법사 드래곤의 동거. 그리고 우드의 재앙은 마을 드베르닉을 넘어 폴니아 왕국 전체로 뻗어나가는데...

 

작품의 줄거리다. 이것만 놓고 보면 유쾌한 판타지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작품의 내용은 진중하다. 분위기는 차분하며 문장은 유려하고 묘사 또한 세밀하다. 가볍게 보는 여타의 판타지로맨스가 아니라는 거다. 왜 아닌가?

 

주체적인 결정

마을 사람들은 예쁘고 밝으며 똑똑한 카시아가 드래곤의 선택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시아 또한 그것을 자신의 운명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드래곤의 선택은 키만 크고 자유분방한 아그니에슈카였다. 그녀에게 흐르는 천부적인 마법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소설은 크게 캐릭터 위주와 스토리 위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일인칭 시점이기도 하지만 아그니에슈카란 매력적인 여자주인공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사건을 만들어서 글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흔히 이런 자유분방한 인물을 설정하곤 하는데, 중요한 건 주인공의 행동에 얼마나 개연성이 있는가, 자연스러운가가 독자들의 공감획득을 좌우한다.

 

드래곤의 탑에 갇히게 되는 아그니에슈카의 예전 생활이 자유분방했다고 해서 그걸 전제로 탑 안에서의 행동 또한 그렇게 그려졌다면 글은 매우 가벼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그니에슈카의 생활은 당연하게도 두려움과 걱정, 그로인한 실수투성이다. 드래곤에게 마법을 배우는 속도 또한 매우 느리다. 무시당하기 일쑤인 아그니에슈카지만, 그녀는 절친 카시아가 우드로 잡혀간 것을 알고는 탑을 탈출해 자신의 힘으로 카시아를 구출한다.

이후의 모든 행동도 아그니에슈카,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한다. 드래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질책 등이 있지만 결정은 자신이 한다. 주체적인 인물이란 거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주인공. 그로인한 결과는 오로지 자신의 몫이고 파생되는 상황 또한 그녀가 감당해야하지만 아그니에슈카는 그 모든 걸 감내한다. 자유분방하기만 했던 주인공이 역경을 이겨내면서 점차 지혜롭고 강단 있어진다는 거다.

작품은 이런 아그니에슈카의 모험을 통해 주체적인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의 감내가 우리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하단 걸 어린 소녀의 성장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그리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마녀의 기운을 가진 아그니에슈카, 천재 마법사 드래곤, 왕권을 노리는 폴니아 왕국의 둘째 왕자 마렉과 드래곤의 라이벌인 궁정마법사 팔콘, 마렉의 어머니인 왕비 정도가 주요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그니에슈카만큼이나 흥미로웠던 인물이 바로 카시아다.

 

개인적으로, 드래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카시아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읽으면서 꽤 궁금했다. 운명이라 여겼던 선택에서 탈락했다면 주인공 아그니에슈카를 꽤나 미워하고 그로인해 그녀를 방해하는 인물로 비중 있게 그려졌을 법도한데, 작가는 카시아를 여전히 절친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절친인만큼 아그니에슈카의 유능한 조력자로 성장시킨다.

아그니에슈카만큼 주체적으로 상황을 이끌거나 하지는 않지만, 두드러지는 활약상은 아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돕고 행동한다. 그렇게 점차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카시아의 모습이 어쩌면 아그니에슈카보다 더 강한 신념의 소유자처럼 보이게도 한다. 우드에 잡혀가 죽을 위기에서 살아나고, 오염되지 않았을까 하는 사람들의 냉혹한 시선을 꿋꿋이 감내하며, 아그니에슈카를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카시아의 속 깊은 마음씨와 행동은 환경이 어떠하든 자기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란 걸 보여주는 듯하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삶이 헝클어졌다고 해서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자기만의 길이 보이고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걸 카시아는 곳곳에서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아그니에슈카의 한쪽에 사부이자 연인으로 드래곤을, 한쪽에는 절친이면서 주인공과는 또 다르게 성장하는 카시아를 배치했다. 드래곤을 통해 주인공의 외적능력을 높이고 자신의 신념을 대비시키는 효과를 가져갔다면, 카시아를 통해 내적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의지하게 만들었다.

점점 힘들어지는 환경에 놓이지만 아그니에슈카는 그 두 사람이 있기에 흔들리지 않고 상황을 타개해나간다. 어떻게 보면 작가는 아그니에슈카란 한 인간 속에 드래곤이란 차가운 이성을, 카시아란 따뜻한 인간미를 이식시키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두 가지을 바탕으로 아그니에슈카란 매력적인 인물이 구현된 게 아닐까.

 

오염

우드에 들어가거나 잡혀간 사람들(동물 포함)오염이란 이름으로 변질되어 죽는다. 그 오염은 전염될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오염은 외적으로는 흑마법의 바이러스처럼 묘사되지만, 내적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부정한 생각, 마음, 기운 등을 포함한다. 즉 선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오염의 정체가 드러나지만, 이 글의 첫 부분에서부터 그 내적오염의 조짐이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선택된 아그니에슈카와 탈락한 카시아의 관계가 그렇다. 아그니에슈카는 자신이 드래곤의 선택을 받지 않을 거란 생각에 마음 한편에는 안도감이 있었다. 절친인 카시아가 불쌍하지만 불행한 사건에서 자신은 제외된다는 그 무사함을 애써 모른 척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카시아는 일찍부터 드래곤의 선택을 운명으로 여기고 그 부당함을 받아들이려는 자세였지만, 그녀 역시 탑으로 끌려가는 것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어찌 좋을 수 있겠는가. 십년 후에 풀려나는 소녀들에 관한 진실들이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억측들만 난무하는 상황에서 탑에 갇히게 된다면 누구라도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카시아는 당당하고 담담히 받아들이려 했다. 그리고 막상 탈락한 후 나중에 아그니에슈카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큰 슬픔을 느낀다.

 

누구라도 불행이 자신을 비켜나가길 원한다. 아주 가까운 사이라도 자신이 아니라면 조금의 안도감을 느끼는 건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다. 아그니에슈카가 애써 외면했던 무사함에 대한 안도감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카시아의 입장에서라면 매우 큰 서운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 비록 이해는 된다고 해도 말이다.

어떻게 보면 아그니에슈카와 카시아의 감정들이 별거 아닐 수 있다. 당연한 본성으로 치부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두 소녀의 감정을 교류, 소통시켜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 부정한 생각 등을 지워냈다. 이해와 믿음으로 승화시켰다. 이 점이 중요한 건, 왕국에 재앙, 오염을 뿌리는 우드에 대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왜 왕비는 잡혀가게 됐고, 마렉은 왜 그런 성격이 되었을까. 전설의 마녀 야가의 마법은 왜 치유의 마법으로 불리고, 아그니에슈카는 탑에 있는 그 많은 마법서들 중에서 왜 하필 야가의 마법서를 발견하게 됐는가, 폴니아 왕국은 왜 다른 나라와 싸우려드는가 등이 이와 연결된다.

 

이 글에서 오염은 겉으로 드러나는 우드의 재앙을 넘어서, 바로 우리 자신이 언제든 타인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행동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바로 주인공에서부터 드러나는 우드의 정체까지 말이다. 단순히 악을 물리치고 선이 승리하는 게 아니라,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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