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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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책소개에 유럽권 독자들은 영화 [인셉션][메멘토]를 연상케 한다는 서평과 함께...’라는 문장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인셉션보다는 메멘토와 좀 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인셉션이 기억의 모호성, 타인의 기억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 장자의 호접몽 철학,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취한 열린 결말 등을 특징으로 한다면, 작품의 구성방식과 한정된 사건, 기억의 실체를 찾아가는 메멘토의 설정이 내겐 더 그렇다.

 

이 작품은 구성방식, 즉 이야기 흐름이 굉장히 중요하다. ‘기억의 반복’.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다음 사람을 죽여라의 주인공 테드 또한 한정된 기억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일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메멘토의 주인공이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기억을 남기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사건의 시간을 재구성해 나간다면, ‘다음 사람을 죽여라의 테드는 한정된 기억을 복기하고 구멍 난 부분을 메워나가면서 과거의 실체를 깨달아간다. 점점 복구되는 기억이 드러나면서 진행되는 다음 사람을 죽여라의 이야기 흐름은 문신을 단서로 사건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는 메멘토와 달리, 마지막까지 진짜 기억이 무엇인지조차 헛갈리게 만든다.

이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데, 그러니까 복구되는 기억마저 이가 빠져있어 마지막까지 달리지 않으면 전체의 큰 그림을 볼 수 없다는 거다. 4부로 구성된 이 작품의 책소개의 한 구절을 발췌한다.

 

[이를테면 1부의 일부 내용이 2부에서 변형 · 반복되었다가 3부에서 완전히 부정되고 4부에 이르러 진실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야기의 반복과 변형에 이어 다시 부정되고 마지막에 진실에 이르게 된다는 건 흡사 미로에서 길찾기가 연상된다. 출구가 어딘지 몰라 무작정 나아가다보면 막히는 곳에서 돌아가게 되고, 되돌아가면서 다른 곳으로 빠지면 길은 새롭게 변형된다. 다시 막다른 곳에 부딪치면 결과적으로 맞게 왔던 일부의 길마저 부정하게 되면서 큰 혼란에 빠진다.

이때 중요한 건 침착하게 왔던 길을 표시하는 거다. 그러면서 잘못된 굴곡의 길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것. 이 작품에서 표시를 해 올바른 방향으로 찾아가는 단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체스. 침착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건 테드가 지닌 말편자이고 말이다.

 

[p 424. 망각의 막을 뚫고 들어온 또 다른 기억.]

 

글의 첫 장면인 테드의 자살시도는 제목이기도한 다음 사람을 죽이는사건으로 이어지고 이 부분이 이야기의 변형을 가져와 계속 변주되는데, 이 과정이 언뜻 맥거핀효과처럼 보여 독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작품의 끝을 향해 달리지 않으면 전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반복과 변형 속에 이 맥거핀이 속해있으니 결과적으로 맥거핀 효과의 반전이랄 수 있겠다.

 

복구되는 기억이라는, 어떻게 보면 간단할 수도 있을 전체의 사건을 이만큼 변주해낸다는 점에서 작가의 영민함이 느껴지지만, 이러한 이야기 흐름과 방식을 어려워 할 독자도 있겠다. 그러나 흡인력이 강력해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니 이 또한 작품의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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